[엘르보이스] 서울을 떠도는 사람의 희한한 집 취향

우리 모두는 서울을 떠돈다. 출판사 봄알람 이두루 대표도 마찬가지다.

ⓒ max fuchs

ⓒ max fuchs



서울을 떠도는 사람
주거 이력서를 써보고자 한다. 대학 진학과 함께 충청남도 본가를 떠났다. 서울살이는 17년 차, 혼자 살기 시작한 것은 10년 차. 월세와 반전세를 거쳐 전세로 건너왔고, 서울살이 기간만 셈하면 지금 사는 곳은 일곱 번째 집이다. 이 외에 사무실 매매 이력이 한 건, 내 집을 가져본 적은 없다.
 
이력서를 쓴 김에 자가 면접을 해보기로 한다. 첫 번째 질문. “집을 구할 때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무엇인가?” 답. 분위기다. 빈틈없이 짜인 신축 로열층보다 희한한 구조의 구옥 꼭대기 층에 매력을 느낀다. 혼자 살았던 첫 원룸은 한쪽 벽이 65° 정도 기울어져 있었고, 옆으로만 걸을 수 있는 폭 50cm짜리 베란다가 있었다. 그다음 4년간 살았던 투룸은 집 전체가 기역자 형태의 베란다로 둘러싸여 있었는데, 거실과 부엌 공간이 없다시피 했다. 베란다 크기가 극단적으로 달랐던 두 집의 공통점은 엘리베이터 없는 5층 건물의 맨 꼭대기 집이라는 것이었다. 같은 건물에 사는 누구도 자기 집에 가기 위해 내 집 문 앞을 지나가지 않는 집 말이다. 그다음 집 역시 엘리베이터 없는 건물의 마지막 집이었다. 일부러 이 조건을 찾아다닌 것은 아니었는데, 꼭대기 집이 나오자마자 계약하는 결정 인자가 내 안에 있는 것일까?
 
그다음 질문. “여전히 주거 불안을 느끼는가?” 답. 물론이다. 계약 만료일이 다가올 때마다 강하게 시달리는 편이며, 이사 갈 집을 정하기까지 스트레스도 많이 받는다. 매번 여러 지역의 부동산 수십 군데를 돌며 그보다 많은 수의 집을 봤다. 고되지만 어쨌든 집은 구해야 하니 별수 없는 일이라 여겼는데, 비슷한 시기에 무려 세 번을 이사한 동료 A는 한두 개의 물건만 보고 집을 턱턱 정해 옮겨 다녔다. 아니, 저럴 수 있다고? 그런데 왜 나는 이렇게 어려울까? A와 대화 후 도출한 결론은 정답 없는 것을 추구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매번, 이 공간을 받아들일 결심이 필요하다. 이는 대중교통 편의성이나 엘리베이터 유무와 달리 부동산 앱에 기재된 정보로는 파악할 수 없으므로 발품을 팔아야 한다. 어쩔 수 없다. 일단 살기로 정하면 내가 가진 (대부분의)금전과 시간이 집에 묶이지 않는가?
 
집 안쪽과 달리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층계와 건물, 골목과 동네 곳곳이 내 매일의 풍경이 된다. 내가 바꿀 수 없는 것이 내 생활이 되는 만큼 정 붙일 결심이 서지 않으면 감히 여기 살겠다고 결정할 수 없다. ‘주거지와 자기 존재를 중요하게 엮어 생각하는 정도’를 수치화한다면 나는 분명 평균을 웃도는 수치일 것이다. 그런 사람에게 내 집이 없다는 건 주거 불안을 계절마다 돌아오는 감기처럼 앓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실제로 계약 만료 시기가 다가오면 나는 주거 불안에 감염된 주거 부랑자 상태가 된다. 적지 않은 세간을 짊어지고 새 인연을 찾아 서울의 온갖 매물을 울적하게 두드리고 다니는 것이다.
 
다시 질문. “그렇다면 역시 목표는 ‘내 집 마련’인가?”
답. 아니다. ‘내 집 마련’은 한 번도 내게 주요한 목표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살아보기 전에는 결코 알 수 없는 수많은 동네, 어떻게 지어졌는지 알 수 없는 수많은 집, 음모와 불신에 휩싸인 알 수 없는 부동산 시장, 무엇보다 앞으로 어디서 어떻게 살고 싶은지 알 수 없는 나. 이렇게나 알지 못하는 것들의 총합을 어떻게 목표로 삼을 수 있겠는가? 이 정도로 불확실한 것에 전 재산과 영혼, 미래를 엮는 건 내게 합리적이지 않다.
 
ⓒSarah Lee

ⓒSarah Lee

 
마지막 질문. “그럼 어쩌게. 계속 그렇게 2년마다 벌벌 떨면서 살 건가?” 답. 어쩌겠는가? 내게 집이 없는 것은 집을 살 돈이 없기 때문일 뿐이다. 서울이라는 도에 지난 십수 년의 소득과 다가올 십수 년의 소득을 묻을 결심이 서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먼 미래를 이 도시의 어딘가에 묶어두고 그 선택이 이득이 될까, 손해가 될까 노심초사하며 발을 동동 구르는 일은 약속된 불행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아마 당분간은 쭉 부동산 계약 기간을 주기로 부랑하는 팔자일 거다. 집 없는 서울 시민은 주기적으로 어딘가로 내쫓기지만, 동시에 주기적으로 살 곳을 다시 선택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런 식으로 이 징그럽게 비싼 도시의 작은 지역과 또 한 번 짧은 인연을 맺는다.
 
그리고 내가 선택한 새로운 동네의 골목을 구석구석 걷고 또 걷는다. 낯선 골목과 가게, 건물과 대문은 딱 기간 한정으로 내 동네인 만큼의 재미가 있다. 총선이 다가왔으므로 새 동네의 투표소를 확인한다. 지정 투표소인 모 학교 진입로 아스팔트 위에 깔끔하게 표시된 보행 안내선을 보며 웃는다. 이 선의 필요를 느끼고 이렇게 정확하게 그려두기까지 관여했을 이곳 사람들을 상상하며 내 집 없는 내 동네에 잠시 마음을 붙인다. 그냥 이런 사람도 있다. 엘리베이터 없는 5층 집을 좋아하고, 빌려 사는 만큼만 서울과 엮이고 싶은.
 
 
이두루
페미니스트 출판사 봄알람 대표.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와 〈김지은입니다〉 등을 펴냈다. 현실을 다룬 텍스트와 논의가 여성의 삶에 즉각적으로 개입하는 힘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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