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르보이스] 우리는 모두 청소년이었다

청소년 시절의 나와 지금의 나는 얼마나 이어져있을까? 지금을 살아가는 소녀들을 이해하는 방법.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



우리의 청소년기
지난 2월, 〈어른이 되면 고민이 끝날까?〉라는 책을 냈다. 청소년을 주요 독자로 삼아 열다섯 가지 고민에 관한 이야기를 적합한 콘텐츠와 함께 풀어내는 컨셉트다. 청소년 타깃의 책을 썼다고 하면 어김없이 “원래 청소년에게 관심이 많았나요?” 또는 “그들을 자주 만났나요?”라는 질문이 돌아오는데, 절대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자주 민망해진다. 내가 이 책을 쓰게 된 건 순전히 내 첫 에세이집 〈아무튼, 잡지〉를 읽고 ‘이 사람이라면 청소년기에 관해 잘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판단한 출판사 편집자 덕분이었다.
 
송구하게도 그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고 밝혀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 말을 하면 대부분이 놀라거나 웃는데, 그도 그럴 것이 이 책은 출판사와 계약한 지 3년이 돼서야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가장 큰 이유는 내가 청소년을 몰라도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성인들이 놓인 환경과 마찬가지로 내 주변에 청소년이 없었다. 딱 한 번 청소년들을 위한 공간에서 워크숍을 진행한 적 있지만, 그 경험만으로 그들을 ‘안다’고 장담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글을 쓰기가 힘들었다. 혼자 책을 쓰기도 하고 다른 작가들과 함께 쓰기도 했지만, 〈어른이 되면 고민이 끝날까?〉는 그중 가장 쓰기 고달픈 책이었다. 본격적으로 마감에 속도를 내기 전까지, 그러니까 약 2년 동안 내가 편집자에게 한 말은 이런 것이었다. “죄송한데 저… 출간 계약을 해지할 수 있을까요?” “청소년을 독자로 하는 책을 도무지 쓸 수 있을 것 같지 않은데요?” “자신이 없습니다” 등등.
 
황효진 작가의 책 〈어른이 되면 고민이 끝날까?〉는 우리의 청소년 시절 또한 돌아보게 한다

황효진 작가의 책 〈어른이 되면 고민이 끝날까?〉는 우리의 청소년 시절 또한 돌아보게 한다

 
필자가 갈팡질팡하는 만큼 책의 테마도 여러 번 바뀌었다. 여성 청소년과 운동, 청소년과 일상을 잘 가꾸는 방법 등등. 겨우겨우 청소년 시기에 겪는 고민과 그에 대한 답변이 될 수 있는 영화와 글을 소개하는 책을 쓰기로 결정하고, 다시 한 번 고민에 빠졌다. 10대 시절이 지난 지 20년 넘게 흘렀는데, 요즘 청소년들의 고민을 알 수 있을까? 내가 청소년일 때와 요즘 청소년이 생활하는 환경은 모든 점에서 다를 것이다. 나름대로 그들이 할 법한 고민들을 열심히 꼽아본다 해도, 그들이 실제로 겪고 있는 고민과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다시 시름에 빠졌다. 이것도 내가 쓸 수 있을 것 같지 않은데…. 하지만 계약을 해지하고 싶다는 말을 또 할 수는 없었다. 어떻게든 써내야 했다.
 
콘텐츠 기획이나 글쓰기 강연을 할 때 내가 늘 하는 말이 있다. ‘다른 사람들이 제 글에 관심이 없으면 어떡하죠? 저 혼자만 좋아하는 글이 되면 어쩌죠?’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내놓는 답변이다. “일단 나라도 좋아할 수 있는 글을 써야 하고요, 내가 읽고 싶은 글이라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동시에 딱 한 명이 이 글을 읽는다고 상상해 보세요. 그건 나일 수도 있겠지만, 타인일 수도 있어요. 세상에 나와 같은 사람이 한 명은 존재할 테니까요.”
 
언젠가 내가 다른 사람에게 들려준 그 말을 따라 나 역시 한 사람의 청소년을 떠올리기로 했다. 내가 정말 잘 아는 단 한 명의 청소년. 내 영혼의 단짝. 그건 바로 ‘10대 시절의 나’였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을 품고 있어서 괴로운 심정, 넉넉하지 않은 집안 사정에 대한 결핍, 어른이 돼 지방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망, 하고 싶은 일을 스스로 찾아내지 못해 갈팡질팡했던 시간과 사이가 좋지 않은 부모님에 대한 불만…. 막연하게 돌아볼 때는 그저 평온하고 즐거웠던 청소년기였는데, 닫혀 있던 서랍을 하나하나 열어 헤집어보니 불안하고 힘들었던 기억이 더 많았다. 나는 이 이야기를 쓰기로 했다. 30대 후반이 될 때까지 누구에게도 얘기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나 자신조차도 잊고 있던 이야기를 쓰기로 마음먹었다. 적어도 그때의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단 한 명의 청소년이 지금도 존재할 거라고 믿으면서 말이다. 그리고 이런 서문으로 입을 떼기 시작했다. ‘정답을 일러주는 일이 아니라면, 그러니까 어른이 돼도 계속 고민해야 하는 질문이 있다고, 어쩌면 그건 거의 대부분의 사람이 평생 안고 가야 하는 질문이라고, 그러니 고민을 나눠보자고 말을 건네는 일이라면 할 수 있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15편의 글을 썼는데, 솔직히 아직도 잘 모르겠다. 이것이 정말 청소년 독자를 위한 글일까? 어른들만 이 글을 읽으며 좋아하고, 청소년기를 아련하게 회상하고 위로받으면 어쩌지? 어른들을 위한 글도 아니고, 그저 나만을 위한 글이면 어떡하지? 나 혼자 이 글을 쓰고 또 읽으며 청소년기에 받았던 상처를 치유하는 거면 어떡하지? 그러다가 생각을 고쳐먹었다. 어쩌면 이 책이 고민에 빠진 청소년에게 대단한 힌트가 될지도 모른다고 상상하는 것 자체가 오만일 수 있다. 성인이면서 노력하면 완벽하게 청소년 입장에 설 수 있을 거라고 믿는 것도, 각자 다른 세계를 품고 있는 청소년의 고민을 몇 가지로 유형화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도 착각이다. 15가지든 100가지든, 모든 성인이 그렇듯 모든 청소년에게는 모두 다른 고민이 있을 수밖에 없고, 그것을 내가 전부 알고 글로 쓸 수는 없다. 단지 내가 할 수 있는 건 내가 쓸 수 있는 글을 최선을 다해 쓰는 것뿐이었다.  이 책이 누구에게 어떻게 가 닿을지 고민하며 불안해하는 대신, 이 책을 쓰며 나는 어땠는지, 어떻게 바뀌었는지 돌아봤다. 그 변화는 성인인 내가 청소년의 자리에 서보는 게 아니라, 아무리 노력해도 완전히 그 자리에 서볼 수 없음을 인정하면서 계속해서 노력하는 것. 그 과정에서 이전에는 하지 못했던 질문을 떠올리고 고민하는 것일 테다. 이를테면 부모님과의 관계에 관한 글을 쓸 때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이 존재하지 않는 청소년도 있음을 상기하는 것. 사랑이라는 감정에 관해 글을 쓸 때는 같은 성별을 좋아하는 청소년에게 이 글이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고민하는 것. 진로에 관한 글을 쓰며 모든 청소년이 대학에 진학할 거라고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것. 책을 쓰는 시간 동안 적어도 나만큼은 이런 생각을 하며 예전과 아주 조금이나마 달라졌다고 믿는다.
 
〈어른이 되면 고민이 끝날까?〉를 쓰는 도중에 경기도의 한 도시에 놀러 간 적 있다. 공원을 천천히 걸어서 한 바퀴 돌고, 도심의 오래된 쇼핑몰 근처 패스트푸드점에서 점심을 먹었다. 식당 2층에 앉아 아래를 내려다보다 문득 청소년들이 유난히 눈에 많이 띄는 것 같았다. 나름대로 멋을 내고 점심 메뉴를 고민하며 걸어가는 청소년들, 패스트푸드점에 앉아 다른 지역의 사람들에 대해 상상력을 펼치고 있는 청소년들. 그들이 내 시야에 있고, 내가 그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는 게 신비롭게 느껴졌다. 그제야 알았다. 내 주변에 청소년이 없었던 게 아니라 내가 그들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보지 못했던 걸 보게 되면서 앞으로 세상은 내게 조금 다르게 다가올 거라는 사실도. 
 
황효진
책부터 팟캐스트까지 세심하고 다정한 시각으로 다양한 콘텐츠를 꾸준히 만들고, 때때로 실패하며 배우는 기획자이자 작가. 건강하게 일하는 방법을 고민하는 여성들의 커뮤니티 ‘뉴그라운드’를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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