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잔! 40대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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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화는 질병과 동의어가 아니지만, 40년 넘게 사용한 몸은 슬슬 기능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30년 된 아파트에 살면서 세탁기를 돌릴 때마다 수도꼭지에서 물이 샌다거나 화장실 전등 스위치를 몇 번이나 눌러야 불이 켜지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세상에서 걷기를 세 번째로 싫어하는 나이지만(첫 번째는 등산, 두 번째는 달리기다), 이제는 밥 먹고 나면 투명 강아지에게 이끌리듯 스스로 산책하러 나간다. 위장 기능이 떨어져 수시로 체하기 때문이다. 천천히 적게 먹는 습관을 들이면 좋을 텐데, 칠순쯤 그럴 수 있길 바랄 뿐이다. 20대 때 별 어려움 없이 할 수 있던 요가 동작도 유연성이 떨어진 요즘은 훨씬 힘들다. “지은 님, 어깨를 좀 더 여세요!” “무릎을 더 구부리세요!” 같은 말이 들려올 때마다 ‘선생님, 저 40대라고요!’라며 속으로 울부짖지만, 아무리 귀찮아도 일주일 이상 요가를 빠지지 않는다. 그마저 안 하면 등허리가 아파 잠을 못 자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매일 꾸준히 연습하면 관절이 유연해질 거라고요? 앗, 잘 안 들 리 네 요!
올겨울에는 스마트폰 메시지를 쓸 때 오타가 많이 난다는 걸 알았다. ‘얘’를 쓰고 싶은데 ‘ㅒ’가 아니라 그 옆에 있는 ‘ㅑ’를 치게 되는 식인데, 이걸 일일이 수정하려니 이루 말할 수 없이 귀찮아 친구들과의 단톡방에는 오타투성이 문장을 그냥 보내고 만다. 그런데 어두운 저녁에 스마트폰 화면이 더 흐릿하게 보인다는 걸 깨닫고는 겁이 덜컥 났다. 자기 전에 불 끄고 몇 시간씩 스마트폰만 들여다본 업보가 이렇게 돌아오는 것인가!
“노안입니다.” 은테 안경을 쓴 반백의 안과 의사가 말했다. “보통 40대 중반에 시작되는데 사람에 따라 빨리 오기도 해요.” 노아 바움백의 영화 〈위아영〉에서 젊은이 문화를 따라 하느라 무리하게 자전거를 타다 통증으로 병원에 간 조시(벤 스틸러)도 의사에게 퇴행성 관절염과 노안에 대한 경고를 들었다. 내게도 때가 온 것이다.
이런 와중에도 나는 나이 먹는 게 조금은 재미있다. 드디어 나이 든 사람들의 생활 패턴을 이해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전에는 엄마의 외출용 가방에 왜 그렇게 잡다한 물건이 많은지 알 수 없었다. 이를테면 주유소에서 받은 포켓 티슈, 물병, 낱개 포장된 사탕 몇 개, 껌, 소화제, 구김이 적은 카디건, 스카프, 양산 같은 것들인데 이제는 나도 그것이 죄다 필요하다는 걸 안다. 뙤약볕 아래를 돌아다니고 영하의 날씨에도 구두를 신던 시절과는 달리 지금의 나는 더위와 추위, 햇볕에 민감해지고 갑자기 당이 떨어지거나 체하거나 기침이 나온다. 그래서 이 모든 짐을 이고 지고 다니는 데는 백팩이 최고이며, 보온과 통기성을 두루 갖춘 의상은 등산복이라는 어르신들의 패션 철학에도 동의한다. 모자는 역시 챙이 넓고 끈이 달린 게 좋지. 머리숱이 적어지니 파마는 좀 빠글빠글 말아야 해. 암, 그렇고말고요!
최지은
10년 넘게 대중문화 웹 매거진에서 일했다. 〈괜찮지 않습니다〉 〈엄마는 되지 않기로 했습니다〉 〈이런 얘기 하지 말까〉를 펴냈다. 늘 행복하지는 않지만 대체로 재미있게 살고 있다. 뉴스레터 ‘없는 생활’ 발행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