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르보이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덕심'

월드컵이 끝났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덕심’
월드컵이 끝났다. 2002년에 4강 신화(나 역시 죽을 때까지 우려먹을 것이다. 축구는 내가 한 게 아니지만 국가 단위로 파티에 젖어 있던 시절을 직접 살았다는 것은 얼마나 흥분되는 일인지!)를 보고, 10년쯤 뒤에 영국 프리미어리그에서 뛰는 멕시코 선수에 반해 맨유의 홈구장인 ‘올드 트래퍼드’를 누비다가 또 이후 10년쯤 지난 올해에는 가족들과 텔레비전으로 월드컵을 지켜봤다. 이제 ‘오빠’는 선수단에 단 한 명도 없고 예능 프로그램에서 봤던 ‘슛돌이’가 다 커서 경기 판도를 바꾸는 모습을 봤다. 축구판에서  멀어졌던 30대 후반의 서포터는 월드컵 기간  내내 한국 대표팀이 보여준 경기력이 10년 전 올드 트래퍼드에서 봤던 선수들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 내내 경이롭고 흥분됐다.
 
내게 이번 월드컵이 각별했던 이유는 주장 손흥민 선수의 서사 때문이었다. 안와 골절 부상을 안고 마스크를 쓴 채 뛰었던 손흥민이 누구에게든 절절하지 않았겠냐만, 나의 최애 배구 선수인 김희진 선수가 무릎 수술 후 두 달 만에 도쿄올림픽에서 뛰어야 했던 순간이 아직도 마음속에 깊이 박혀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면서 축구 대표팀의 마음을 한 줄로 압축한 문장이 선수들을 향한 응원을 멈추지 않게 했다면, 도쿄올림픽 때는 걷는 것조차 힘들었던 김희진 선수가 운동화에 새기고 코트에 올랐던 ‘Never say never’, 주장 김연경 선수가 작전 타임에 외쳤던 ‘해보자 해보자 후회하지 말고’가 남았다. 오랜 축구 팬인  김희진 선수는 이번 월드컵 동안 축구 대표팀에 대한 응원과 주장 손흥민의 투혼을 기리며 〈스포츠서울〉 칼럼에 기고를 했으며, 몸의 한계를 이기고 국민적 기대에 부응하며 살아가는 스포츠인들의 서사를 읽고 시청하며 나는 울었다.
 
그 사이 12월 2일에는 경기도 화성 IBK 홈구장에서 김희진 선수와 IBK 기업은행  알토스 배구단을 응원했고, 이틀 뒤에는 아시아 여자 핸드볼 선수권 결승을 시청했다. 한국 대표팀은 헝가리에서 뛰고 있는 에이스 류은희 선수를 필두로 일본에 대역전승을 거두면서  6회 연속 우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공을  품에 안은 채 맨몸으로 수비진을 돌파하면서 경기를 헤쳐나가는 핸드볼 특유의 매력에서  또 다른 감명을 받았다. ‘배없날’ 월요일을 제외하면 일주일 내내 V리그를 보다가 핸드볼 국가대항전까지 보고 나니 더 경이로운 기분이었다. 세계적 관심을 받는 종목의 경기들과 함께 봤기 때문일까, 응원하는 마음이 마냥 신나기만 했다면 거짓말이다. 엄청난 시장과 천문학적 연봉이 제공되지 않는데도 도대체 이 위대한 여자들은 어디서 자꾸 나오는가? 스포츠판에 대해 관심을 가지면 가질수록 걸출한 여성 선수들이 나오기 쉽지 않은 환경이란 걸 알게 된다. 그럼에도 매일매일 나의 무지와 불공평한 중계 기회로 발견하지 못했던 선수들을 찾아낼 때마다 기쁨과 함께 미안함, 섭섭함이 밀려온다.
 
엉덩이를 붙인 채 글을 쓰는 내가 온몸을 날리는 선수들에게 미쳐 살게 된 것은, 그럼에도 원고를 내기 전까지의 과정은 오롯이 내 것인 작가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때로는 운동경기라는 것이 선수 개인을 두고 생각하면 경기장 내에서 모든 과정이 생중계되는 실시간 예술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대본으로도 만들기 힘든 드라마를 만들어놓고, 경기가 끝나고 나면 숫자로만 남는 세상에 승복하며 살아가는 그들을 어떻게 존경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렇기 때문에 늘 사랑하는 만큼 간절해지는 것이다. ‘Never say never’ 마인드로 사랑을 퍼붓는 팬들과 오래도록 행복했으면, 꺾이지 않는 마음을 간직하되 무리한 기용으로 몸 어딘가가 꺾이지 않았으면, 해보자 해보자를 외치는 사람이 운동장 밖에도 있어서 많은 관계자의 의지와 도움으로 선수들이 더 많은 기회와 평등 속에서 운동할 수 있었으면.
 
팬들에게 뜨거운 초겨울을 선사한 축구 대표팀과 사실상 결승전이라고 불리는 한일전을 진짜 결승으로 치르며 엄청난 드라마를 보여준 여자 핸드볼 대표팀과, 나의 뜨거운 사계절을 책임지는 배구선수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보낸다. 같은 투지로 각자의 경기에 모든 것을 쏟는 선수들을 바라보는 팬들의 마음에 서러움이 낄 자리 없이 사랑으로 충만하도록, 선수들이 마음껏 행복하게 자신의 경기를 뛸 수 있기를 바라며. 늘 이걸 앉아서 봐도 되나 미안해하던 마음을 담아, 엉덩이 붙인 채 할 수 있는 작가의 최대한의 사랑으로, 허락된 지면에 한 줄 새기며 마무리하고자 한다. IBK기업은행 알토스 V4, 가보자고!
 
곽민지
다양한 비혼자의 일상을 이야기하는 예능 팟캐스트 〈비혼세〉 진행자이자, 출판 레이블 ‘아말페’ 대표.  〈걸어서 환장 속으로〉  〈아니 요즘 세상에 누가〉를 썼다. 여성의 몸과 사랑, 관계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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