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딸 나은이에게는 자신을 사랑해 주는 세 명의 할아버지가 있다. 나의 아버지는 두 분, 그러니까 어머니의 재혼이 선사한 새 가족 덕에 아이는 할아버지의 사랑을 보너스로 더 받고 있는 셈이다. 나은이가 말을 배우기 시작하자 친정엄마는 아이가 할아버지를 부를 때 거주하는 지역명을 붙이면 어떻겠냐고 조심스럽게 말씀하셨다. ‘서울 할아버지, 포항 할아버지, 경주 할아버지’라고 말이다. 그러곤 당신의 이혼이 자식의 자식에게까지 영향을 주었다며 미안해 하셨다. 손주들까지 혼란스럽게 만들었다며. 아직도 불쑥불쑥 솟아나는 친정엄마의 미안함은 사실 이혼만이 아니다. 경주 할아버지가 시각장애인이란 사실도 크게 자리했으리라 짐작한다.
나는 아이가 내게 질문할 때까지 이 모든 상황을 미리 설명하지 않았다. 어떻게 아이에게 설명해야 할지 막막했던 것도 사실이다. 올봄, 경주로 이사 와 일곱 살이 된 나은이가 드디어 말을 꺼낸 것이다. “엄마, 나 할아버지가 눈이 잘 안 보이는 거 알아. 그걸 뭐라고 부르지? 장애인인가?” 나는 잠시 고민에 잠겼다.
경주 할아버지가 처음부터 눈이 보이지 않았던 건 아니었다. 엄마와 재혼하고 10여 년 동안 서서히 시력을 잃었다. 그래서 그에겐 나는 영원한 스무 살, 엄마는 40대에 머물러 있다. 내겐 20년 넘게 어떤 호칭으로도 불려본 적 없는 그지만 언젠가 엄마로부터 전화가 왔다. 다른 사람들은 궁금하지 않은데, 나은이 얼굴이 너무 보고 싶다며, 꿈에서도 나오지 않는 얼굴이 너무 궁금해서 미칠 것 같다며 그가 밤새 울었다 했다. 잠깐, 아주 잠깐 눈을 뜰 수 있다면 그 1초를 나은이를 보는 데 쓰고 싶다고 간절히 빌던 당신이었다. 그는 내 아버지가 되지는 못했으나 나은이의 할아버지로 살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그때부터 그를 나은이처럼 할아버지라고 부르기로 마음먹었다.
“나은아. 할아버지는 장애인이 맞아. 눈이 안 보이는 사람을 시각장애인이라고 해. 그러나 볼 수는 없어도 눈이 잘 보이는 사람보다 더 잘 느끼실 수 있어. 모든 감각이 눈 대신 피어나. 그래서 우리보다 더 빨리 계절의 변화도 알아차릴 수 있어. 공기 냄새와 들려오는 아침의 소리로 하루가 시작되는 것도 알아차릴 수 있지. 지난해보다 좀 더 분명해진 발음으로 ‘할아버지~’라고 부를 때마다 목소리만 들어도 나은이가 얼마나 컸는지 아신대. 나은이는 언제 할아버지가 다르다는 걸 느꼈어?”
“동생이 눈앞에 있는데 어디 있냐고 이름을 부를 때요. 꼭 막대기를 들고 산책을 나가시는데 계속 눈을 감고 계실 때 느꼈어요. 할아버지는 제 얼굴을 모르겠네요. 제 동생 얼굴도 모르고요. 너무 슬퍼요.”
산다는 것은 봄을 한 번 더 만난다는 것이라고 하지 않던가. 봄은 보이지 않던 것들이 여기저기 계속 보인다고 해서 ‘봄’이라고 한다. 나은이는 일곱 번째 봄을 만나면서 드디어 할아버지를 새로 보기 시작했다. 아이가 그만큼 성장했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럼에도 올해는 유난히 ‘봄’이라는 단어가 야속하게 느껴진다. 볼 수 있는 이들에게만 봄이 찾아오는 것은 아닐 테니 봄이 볕이나 꽃이란 말이라면 어땠을까 상상도 해본다.
할아버지의 옷자락을 잡아 조심스럽게 길을 이끄는 나은이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당신은 오늘도 내 아이들을 안고 아파트 중앙 현관 앞에 나무처럼 서서 따사로운 볕을 느끼고 있다. 그의 마디 굵은 가지 끝에 피어난 여리고 예쁜 꽃이 봄바람에 흔들리는 걸 잠시 나도 눈 감고 느껴본다.
“엄마, 좋은 생각이 있어요. 할아버지 손을 제 얼굴에 가져가 만져보라고 하면 좋겠어요. 할아버지는 손이 눈이니까요! 그럼 제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 있어요. 아주 귀여운 푸들 강아지를 안내견으로 드리면 어떨까요? 제가 그 강아지를 잘 돌볼 자신이 있어요!” 아이들의 작은 가슴에서 피어오르는 귀여운 생각이 어른들을 살게 하는 힘 같다. 장애인, 안내견처럼 가르친 적 없는 단어를 불쑥 사용하며 자신의 성장을 증명하는 아이를 보며 나 또한 너처럼 성장해 가는 단단한 어른의 모습을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한다.
오늘도 자신 안에 온전히 갇히지 않고 세상과 소통하는 용기 있는 한 사람, 종종 절망에 빠지려는 아내를 실없는 유머로 일으켜 세우는 평범한 남편, 그리고 숫기 없는 딸내미의 호칭 없는 부름에도 따뜻하게 답해준 아버지. 까불이 손녀가 장난치다 넘어져도 “너는 순발력이 참 좋은 아이구나! 많이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말해주는 멋진 할아버지가 우리와 함께 여기, 경주에서 살고 있다.
전지민 전 에코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그린 마인드〉 편집장. 지금은 가족과 함께 서울을 벗어난 삶을 살며 여성과 엄마로서 지속 가능한 삶을 고민하는 내용을 담은 〈육아가 한 편의 시라면 좋겠지만〉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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