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관계가 야외 음악 페스티벌 같던 때가 있었다. 내 친구들과 돗자리를 펼친 채 놀다 보면 친구의 친구들이 들러 인사하고, 주저앉아 각자 싸온 음식을 나눠 먹다가 또 누군가를 데려오고, 그들 중 누군가의 돗자리로 건너가서 앉아 놀다 보면 어느새 노을이 지고 헤드라이너가 무대에 오르는···. 음악과 술을 통해 너의 친구가 곧 나의 친구가 되는 일이 어렵지 않던 시절. 즐거웠고, 모르던 여러 가지를 배웠으며, 늘 분주했다. 지금보다 체력도, 호기심도 많던 20~30대였고, 내가 외향인이자 직업적으로(늘 새로운 누군가를 만나지 않을 수 없는) 에디터였으며, 코로나19 이전이기에 가능했던 이야기다. 이제는 기억도 나지 않는 사람들, 가까워졌다가 여러 이유로 소멸된 관계들이 대부분이지만, 그중 몇몇은 여전히 좋은 친구로 남아 있다.
마스크와 모임 없는 일상에 익숙해진 몇 년 사이 많은 것이 달라졌다. 제약이 많아질 때 삶은 단순하게 규모를 줄이고,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다. 요즘 나는 새로운 사람을 알게 될 일은 거의 없으며, 훨씬 적은 수의 친구를 만나고, 만나지 못하면서도 더 자주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지낸다. 코로나19의 외부적 영향만은 아닐 것이다. 40대 중반이 된 나와 친구들의 나이에 따라 우리 관계도 나이를 먹었다. 우정에도 생애주기가 있다면 조금 더 여유가 생기고 느긋해지며, 깊어지는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할까.
10대에는 단짝 친구의 존재 유무나, 따돌림당하지 않고 어떤 그룹에 소속된다는 것이 곧 필사적 생존의 문제였다. 20대에도 주변 친구들이 준거집단으로 작용하면서 가치관 형성에 치열한 격동을 제공했다. 30대 초반까지 결혼은 특히 큰 사건이었다. 비혼과 기혼, 무자녀와 유자녀의 친구들이 섞여서도 잘 지내는 그룹이 있는가 하면, 적령기에 대한 자기 압박감을 심하게 드러내거나 상대에게도 적용하는 경우는 갈등이 됐다. 한 친구는 자신을 제외한 모임 구성원 전원이 육아 중일 때 참다 참다 포효했던 경험을 털어놓았다. “너희 지금 두 시간째 유아차 브랜드 이야길 하고 있는데, 다음에 만날 때도 이럴 거면 그냥 나는 부르지 마라.” 상황의 차이보다 대화 지분과 관심사의 편중이 문제였다. 거꾸로 아이 엄마인 친구들이 양육자로서 다양한 어려움을 겪을 때, 경험해 보지 못한 나로선 거들 수 있는 부분이 없었다. 다만 잠시 집안 일을 잊을 수 있도록 기분 전환하는 것뿐이었는데, 그런 시기에는 내가 뜻하지 않은 서운함을 주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제 친구들의 아이들은 대부분 중학생이고, 외출한 엄마에게 연락하는 상황은 배달 음식을 시켜달라는 주문이 전부다.
여자들의 우정이 연애와 비교해 평가절하되던 시기도 있었다. 그 둘이 마치 양립 불가해서 택일해야 할 무엇처럼 취급되는 이유부터 질문을 던져 볼 일이다. 버지니아 울프는 〈자기만의 방〉에서 문학작품에 나타나는 여성들 간의 관계가 복합적 우정이 아니라 단순한 질투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며 이렇게 썼다. “거의 예외 없이 여성은 남성과 맺는 관계를 통해서만 제시됩니다. (중략) 남성과의 관계는 여성의 삶에서 아주 자그마한 부분밖에 차지하지 못하는데 말이지요.” 이게 무슨 말인지 온전히 이해하게 된 것도 40대가 되어서인 것 같다. 호르몬이 흑마술사처럼 나를 조종하던 어린 시절에는 그 부분의 비중이 조금은 더 컸다.
사회에서 내 자리를 찾고 적응하느라 여유가 없어서, 호르몬에 추동되어 헤매 다니느라, 양육자로서 아이들을 돌보고 뒤치다꺼리하느라 바빴던 시기를 거쳐 이제 친구들은 대체로 홀가분해졌다. 직업적 책임이 커지고 일이 어깨를 짓눌러 올 때나 커리어에 큰 전환을 맞을 때도 그런 고민을 털어놓고 공감할 상대로서 서로 또 든든한 역할이 되어준다. 업계를 막론하고 여자에게 팀장 자리를 쉽게 주지 않는 조직에 함께 분개하고, 어느새 꼰대가 되어버린 나이에 어린 사람들에게 취할 수 있는 최선은 뭘까 고민하며, 하나둘 시작된 신체의 노화 증상과 영양 보조제 정보를 함께 나눈다. 내가 정말로 기대하는 건 친구들이 하나둘 은퇴하게 될 50대 이후인데, 함께 좀 더 느긋한 시간을 보내고 긴 여행을 다닐 그날이 몹시 기다려진다.
내가 아끼며 가꾼 정원을 바라보듯 친구들을 본다. 앞으로도 새로운 꽃이 피어나거나 새가 날아들거나 하겠지만, 수령이 오래된 나무들의 커다란 존재감이 소중하다. 우리 사이에는 얼마큼의 물이 적당한지, 바람이 통할 수 있게 필요한 거리는 어느 정도인지 서로 오래 지켜보고 또 다투기도 하며 노력해 온 시간이 있다. 40대는 여자들이 우정을 쌓기에 아주 멋진 시기다.
황선우 에세이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사랑한다고 말할 용기〉를 쓰고 인터뷰집 〈멋있으면 다 언니〉를 펴냈다. 오랜 시간 잡지 에디터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여성의 일과 몸을 둘러싼 다양한 이야기를 전하는 운동 애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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