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라는 〈아가씨〉 속 명대사를 접했을 때, 나는 생뚱맞게도 ‘스마트폰’을 떠올렸다. 내 인생에서 스마트폰만큼 나를 망치고 구한 것도 없기 때문이다. 나는 한순간도 폰 중독을 떨쳐본 적 없었고, 이제는 떨치는 식으로 스마트폰을 이기고 싶지도 않았다. 다만 중독에서 벗어나는 방법이 있다면 또 다른 중독으로의 도피라고 생각할 따름이었다.
요즘 오미크론 확산세가 두려워 어디에도 나갈 수 없다.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자 스마트폰 사용에 따르는 죄책감과 허망함도 커져갔다. 나는 마침내 한계를 느끼고 덜컥 개인 유튜브 채널을 개설했다. 주야장천 뭔가를 ‘보는 사람’에서 뭐라도 ‘보여주는 사람’으로 나아가기 위해서였다.
‘혼잣말이 끊이질 않아 음악 넣을 곳이 없는 ADHD 작가의 영상일기’라는 제목의 첫 영상을 게시하면서도 큰 기대는 없었다. 내가 봐도 내 영상은 별로였다. 요즘 유튜브는 어줍잖게 시도해서 될 일이 아니니까 내 비루한 브이로그는 알고리즘 전쟁에 참전도 못하고 묻힐 것이 뻔했다. ‘쯧쯧, 나는 참 센스도, 기술도, 아이템도 없군’이라고 생각했고, 진심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현상이 일어났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내가 그 못난이 영상을 보고 보고 또 보고 있는 것이었다. 나중에는 대사와 의성어까지 달달 외울 지경이 됐는데도 영 질리지 않았다.
그 전까지 나는 누군가 유튜버 해보라는 권유를 “왜 해? 일반인 사는 모습을 누가 보겠어?”라는 되물음으로 일축해 왔다. ‘누가’에 나 자신도 속한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었다. 그런데 내 눈도 눈이었다. 내 세상에서는 나야말로 가장 충성스러운 구독자였다. 나는 지인들에게 글쓰기 취미를 추천하며 “당신이 당신의 제1 독자니까 아무도 읽어주지 않는다 해도 쓸 가치가 있어요”라고 덧붙이곤 했는데, 그 개념을 다른 활동으로 확대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화면 속에서 웃고 먹고 움직이는 나는 아주 낯익으면서도 낯선 존재였다. 일단 거울에 비치는 모습보다 20%는 더 통통해 보였다. 게다가 말을 시작하기 전 반드시 ‘네에~’ ‘쩝!’ 하는 의문의 추임새를 넣는 버릇이 있었다. 머리카락을 몹시 자주 만졌고, 방심하는 순간 온몸의 축이 오른쪽으로 내려앉기 일쑤였으며, 눈을 정말 많이 깜빡거렸다. 모두 사소한 신호였지만, 30년 동안 스스로 알 기회가 없는 습관들이었다.
유튜브를 시작하면 구독자나 좋아요, 댓글 수가 가장 신경 쓰일 것 같았다. 하지만 막상 스타트를 끊자 채널의 흥행보다 내가 살아 숨 쉬며 일상을 영위하는 모습에 집중하게 되었다. 30년 동안 나에 대해서만큼은 누구보다 잘 안다고 자신했는데, 편집하며 찍은 영상을 돌려볼수록 의외의 발견이 생겨났다. 대부분 아름답지 못한 특징이나 습관이라 민망하면서도 이상하게 마음이 들떴다.
‘코딱지 하우스’라는 별칭으로 불리던 원룸도 촬영 스튜디오로서 새로운 공간감을 획득했다. 나는 영상을 찍기 위해 전보다 자주 집을 정돈하고 몸을 씻었는데, 그런 내가 작위적이라기보단 기특하게 느껴졌다. 어찌 됐든 내 일상은 깨끗해지고, 밝아졌다. 환경이 개선되니 코로나19 장기화에 내가 많이 지쳐 있었다는 당연한 사실을 두려움 없이 인정할 수 있었다. 많은 사람이 보지 않아도 좋았다. 누구나 볼 수 있는 곳에 나를 한 조각 내어놓는 것만으로도 세상과의 단절감이 놀랍도록 희석되었다.
소설에서도 서술 시점에 따라 인물을 조명하는 방식이 완전히 달라지곤 한다. 누구에게나 자신의 삶은 1인칭이다. 그렇다면 유튜브 속 내 모습은 3인칭 시점의 재해석일 것이다. 내 조그만 유튜브는 금전적 이득이나 막대한 인기와는 멀었지만, 낡고 지친 현실에 새로운 관점을 부여한다는 점에서는 무엇보다 유의미했다.
이제 나는 글쓰기에 더해 유튜브라는 기록 방식을 추천하고 다닌다. 모두가 솔깃해 하는 것은 아니다. “한다고 누가 보긴 하겠어?” 예전의 나처럼 심드렁한 사람들이 훨씬 많다. 나는 강요하지 않는 선에서 덧붙인다. 〈아가씨〉처럼 환상적이고 강렬한 서사가 아니어도, 우리 모두가 영화배우 같은 멋쟁이는 아니더라도 누구나 자신만의 단편영화를 찍고 조그만 화면으로나마 시사회를 열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고. 보이는 삶이 전부는 아니지만 보려고 해야 보이는 삶의 일면도 있다고, 당신은 아마 당신 삶의 가장 열렬한 독자이자 구독자일 거라고 말이다.
정지음 싫은 것들을 사랑하려고 글을 쓰는 1992년생. 25세에 ADHD 진단을 받은 이후 첫 번째 에세이 〈젊은 ADHD의 슬픔〉으로 8회 브런치북 대상을 수상했고, 〈우리 모두 가끔은 미칠 때가 있지〉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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