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몇 년 전, 내가 기자로 일하던 매체에서 국제앰네스티와 여성 인권 관련 캠페인을 진행한 적 있다. 드라마 속 로맨스의 폭력성이나 일상 속 여성을 향한 차별적 언어를 분석하기도 했지만, 그중 가장 즐거웠던 작업은 ‘소녀’라는 키워드를 바탕으로 10대 여성을 인터뷰한 일이었다. 한국 사회, 특히 미디어에서 소녀 이미지를 과잉 대표하는 것은 K팝 아이돌 같은 ‘미소녀’들이다. 다수가 고등학생, 이르면 중학생 때 대중 앞에 나서는 이 미성년 여성들에게 시장이 요구하는 것은 철저히 가꿔진 외모와 유혹적이면서도 순수한 분위기, 발랄하면서도 흠잡히지 않을 만큼 성숙한 태도다. ‘소녀’는 종종 ‘요정’과 동의어로 쓰이고, 스무 살을 전후해 여신으로 변신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담고 싶었던 것은 그 이미지 너머에 발 딛고 살아가는 소녀들의 삶이었다.
전국 각지의 분식집과 교실, 공원에서 만난 소녀들은 자신의 일상과 꿈, 고민과 즐거움에 관해 진지하게 이야기해 주었다. 자신을 포함한 또래 집단을 가리키는 단어에 관한 솔직한 생각도 들려주었다. “소녀라는 말은 이제는 사람들이 많이 안 쓰는 죽은 말 같아요. 우리를 평범하게 지칭한다면 대부분 청소년이라고 할 것 같아요.”(충북 제천의 대안학교에 다니는 18세) “소녀라는 말을 들으면 ‘꽃’이 생각나요. 뭔가 여리여리한 느낌인데 전 딱히 소녀 같지 않아요.”(서울에 사는 중학교 1학년) “소녀라는 말은 저희한테 하는 말이 아닌 것 같아요. 뭔가 오글거려요.”(강원도 양양의 16세 중학생) “소녀라고 하면 조용하고 차분하고 완전 수줍어야 할 것 같은데, 그중에 제가 해당하는 건 하나도 없어요. 친구들과 있을 때의 저는 좀 돌아이.”(수능을 앞둔 광주광역시의 고3)
Mnet 〈스트릿댄스 걸스 파이터〉(이하 〈스걸파〉)는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 제대로 담아내거나 재현한 적이 드물었던 소녀들의 혈기나 욕망, 장난기를 세상에 내놓은 프로그램이다. 여고생 댄스 크루 중 최강자를 가리기 위해 모인 〈스걸파〉 속 소녀들은 자신의 존재감을 조금도 지우거나 숨기려 하지 않는다. 여자아이는 얌전해야(혹은 겸손하거나 상냥하고, 날씬하거나 예뻐야) 한다고 가르치는 사회에서 이토록 당당하고 왁자지껄한 10대 여성을 한꺼번에 보는 것은 경이로운 경험이었다. 그들은 세상을 잡아먹을 것 같은 얼굴로 춤추고 팔다리를 크게 뻗고 땀 흘리며 최대한 높이 뛰어오른다. 무대에서는 해적도, 럭비 선수도, 〈오징어 게임〉의 진행요원도 될 수 있다. 예쁘지 않아도 괜찮다. 중요한 건 실력이고 승부다. “저희 팀 모토가 ‘죽이고 죽이고 죽이자’니까요!” “이 음악과 싸우고 싶은 사람은 나와도 돼요!” 카메라 앞에 소녀 100여 명을 모아놓았더니 〈프로듀스 101〉이 아니라 〈노는 언니〉나 〈골 때리는 그녀들〉처럼 이기는 데 목숨 걸고, 〈쇼미더머니〉처럼 무모할 만큼 서로를 도발하는 그림이 나올 거라고 감히 누가 예상했을까?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한 끝에 잘하게 됐고, 그래서 스스로 즐길 수 있게 된 소녀들은 자신과 팀에 대한 믿음 하나로 배틀에 나선다. 다른 몸은 각기 다른 장점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그들은 한순간도 말하기를, 웃기기를, 표현하기를 망설이지 않았다. 실책을 저지르기도 하지만 반성한 만큼 성장하고, 간절하지만 비굴하지 않은 모습으로 무대를 떠난다. 이기고 싶은 마음은 뜨겁지만 여기서 우승하지 못하더라도 세상은 끝나지 않는다는 걸, 삶은 계속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스걸파〉가 막을 내린 요즘, 나는 뛰어난 실력을 지녔던 크루의 멤버가 아쉽게 탈락한 직후 친구이자 동료에게 건넸던 말을 종종 떠올린다. “이제 열아홉이야.” 자신의 가능성을 믿는 사람의 무대는 끝나지 않는다. 이렇게 멋진 소녀들이 세상 어딘가에서 씩씩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내게도 용기를 준다.
최지은 10년 넘게 대중문화 웹 매거진에서 일했다. 〈괜찮지 않습니다〉 〈엄마는 되지 않기로 했습니다〉 〈이런 얘기 하지 말까?〉를 펴냈다. 늘 행복하지는 않지만 대체로 재미있게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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