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르보이스] 임현주 아나운서가 한강 러닝을 다시 시작한 멋진 이유

요즘 한강 풍경이 파리 센느강 풍경과 비슷하다는 거 진짜? 운동이 일상이 된 요즘 삶

작업실, 한강, 달리기
 
올해 초, 작업실을 계약했다. 카페에 가는 게 더이상 자유롭지 않은 나날이 이어지며 기왕 이렇게 된 거 오랫동안 로망처럼 꿈꾸던 나만의 작업실을 가져보기로 한 것이다. 발품을 팔은 끝에 운 좋게 ‘서울에서 이 가격이 가능하다니!’ 싶은 공간을 찾을 수 있었다. 이곳에서 나는 조용히 글 작업을 한다. 좋아하는 향을 피우고 노란 불빛 스탠드 아래 써 내려가는 시간. 물론 잘 풀리지 않아 ‘대체 내가 무슨 글을 쓰겠다고!’ 자책하게 되는 시간도 많다. 이럴 땐 계속 모니터만 쳐다보면서 축 처진 얼굴을 하느니 운동화를 신고 밖으로 나간다. 바람을 맞으며 걷거나 달리다 보면 풀리지 않던 의문이나 답답함이 탁 트이곤 하니까. 그러고 보면 글쓰기와 달리기는 꽤 괜찮은 조합이다.
 
작업실에서 길 하나만 건너면 곧바로 한강이 보인다. 해가 질 땐 감동적인 일몰을 볼 수 있는데, 나를 감싼 주변의 아름다움에 몸둘 바 모르는 내적 감격에 휩싸이곤 한다. 육교 위에 잠시 머물다 보면, 아래로는 강변북로를 따라 퇴근하는 차량들이 빨간 후미등을 켜고 달리고 있고, 시선 너머로 반짝이는 여의도가 보인다. 한강은 하늘 따라 파스텔 톤으로, 붉은빛으로 물들고 있다.  
 
이 동네에 산 지 꽤 오래됐는데 올해 들어 한강의 매력을 새롭게 느끼게 된 데는 코로나19 이후 실내보다 실외에서 운동을 즐기게 된 덕이 크다. 나뿐 아니라 한강에서 운동하는 사람들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몇 년 전 파리에 갔을 때, 추운 날씨에도 활기차게 여럿이 러닝하며 지나가는 모습이 생경했는데 지금 한강의 풍광은 그때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각자 제각기, 조화롭게 한강을 누빈다. 이어폰을 꽂고 바람을 맞는 사람, 따릉이를 타는 사람, “지나갈게요”를 외치는 자전거 라이더들, 댕댕이와 산책을 즐기는 사람. 그리고 가장 눈에 띄게는, 달리는 사람들이 있다. 멋진 운동복에 러닝 장비까지 갖춘 이들 사이에서 나는 대충 운동하기 좋은 옷을 휘뚜루마뚜루 걸쳐 입고 나온다.
 
달리기 2년 차가 됐지만 아직 달리는 것이 완전히 습관화되진 않았다. 주 2회일 때도 있고, 월 2회일 때도 있다. 달리기를 하기까지 늘 결심이 필요한 데는 가볍게 매일 할 수 있는 걷기와는 달리 달리기는 확실히 ‘운동’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운동에 대한 내 마음가짐이 20대 시절 ‘건강’보다 ‘미용’에 초점을 맞췄던 것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탓도 있다. 그땐 운동이 의무감이었다. 필라테스와 퍼스널 트레이닝, 요가, 복싱, 발레 등 뭐든 바짝 해보고 한동안 쉬고, 또다시 바짝 하고 면책권을 얻는 식이었다. 물론 지금 내 몸에 남아 있는 근력과 체력 중 일부는 그렇게라도 해둔 과거의 운동에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게 운동을 하다 보면 운동을 미룰 이유가 한없이 많아진다. 날씨 탓, 컨디션 탓, 기분 탓. 올봄만 해도 열심히 달렸지만 여름이 오면 다시 날씨 탓 하며 달리기를 쉬었던 것처럼.
 
그런데 어느 날 아침 일어나는데 목에 담이 든 듯 심각한 뻐근함을 느꼈다. 한의원에서 물리치료를 받았음에도 고통은 5일 이상 지속됐고, 마지막엔 두통까지 찾아왔다. 목이 완전히 유연해진 날, 다시 달려야겠다고 다짐했다. 아니, 달리고 싶어졌다. 이번엔 의무감이 아니라 본능적으로 끌리는 것이었다. 몸이 기억하고 있었다. 지금 내 몸은 달리기가 필요하다고. 땀을 내고, 허벅지에 힘을 주고, 숨이 가빠 올 때까지 호흡을 끌어올려야 한다고. 다시 달리기 위해 한강으로 나갔다. 두 달이나 쉬었는데 얼마나 달릴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들었다. 이전엔 30분을 쉬지 않고 달렸던 내 몸이 오늘은 10분이나 달릴 수 있을까. 다행히 그리 힘들지 않게 20분을 달릴 수 있었고, 온몸과 마음에 감사함이 차오르는 기분을 느꼈다. 막상 달리고 나면 깨닫는다. 이 좋은 걸 하지 않을 이유가 없음을.
 
그동안 순수한 즐거움에 의의를 둬서 기록이나 목표치에 연연하지 않았지만, 이젠 달리는 시간도 조금 더 단축하고 싶어졌다. 글을 쓸 때도 마감을 두는 것이 동력이 되는 것처럼, 달리기도 목표치가 필요한 단계에 온 것이다. 이러면 또 본격 ‘장비발’이지! 다음날 나이키 매장에서 가벼운 러닝 재킷과 조거 팬츠를 샀고, 인터넷에서 단백질 파우더와 허리 밴드를 주문했다. 이 밖에 달리기를 좋아하는 데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는 이미 알고 있다. 우선은 좋은 음악. 그리고 같이 달릴 친구. 옆에서 같이 달리지 않더라도 앱에서 맺은 친구들이 보내주는 박수소리로도 조금 더 힘차게 달릴 수 있다. 인스타그램에 기록을 공유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건 일단 밖으로 나가는 것이다. 달리기의 가장 큰 매력은 길만 있으면 어디서든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니까. 달리기에 대한 감각이 있는 한 걷다 보면 자연스럽게 뛰고 싶어질 테니까.
 
임현주 듣고, 쓰고, 읽고, 말하는 MBC 아나운서. 좋아하는 것을 하며 신중하고 치열하게 살아가는 부지런한 나날을 담은 책 〈아낌없이 살아보는 중입니다〉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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