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올여름에 할 일
」광화문 교보문고의 글판이 여름옷을 입었다. ‘올여름의 할 일은 모르는 사람의 그늘을 읽는 일’이라는 말. 그 말 앞에 할머니가 생각났다. 아는 사람이라고 해서 다 알 수 있는 건 아니지. 내게 가족은 더더욱 그런 존재라 나는 할머니를 알지만 실은 잘 모른다. 할머니를 만날 때마다 그늘을 읽기보다 빛을 읽고 온다. 아니, 그 빛을 받고 온다는 말이 더 적절할 것 같다.
지방 강연을 다녀올 일이 생기면 할머니네서 하룻밤을 보내곤 한다. 할머니 집은 바로 앞에 강을 끼고 있다. 옆집과 경계선인 담장 앞엔 커다란 감나무가 있고, 건너편은 평평한 땅뿐이라 대문과 담장 가운데 펼쳐진 강의 조각만큼은 온전히 할머니 것처럼 느껴진다. 함께 놀러 왔던 친구가 일본영화에 나오는 장면 같다며 극찬한 뒤에는 괜히 더 각별하게 다가오는 풍경이다.
6월 초, 예정됐던 강연을 마치고 오랜만에 할머니 집으로 향했다. 내가 미리 말한 시간에 맞춰 기다리고 있는 할머니 손을 잡고 대문을 들어섰다. 강물은 저녁 빛에 반짝이고 집은 여전했다. 강둑 앞엔 빼곡히 채워진 장독이, 담장 앞엔 푸른 잎을 잔뜩 단 감나무가 날 반겼다. 지난번엔 감이 잔뜩 열려 있었는데. 금방 올게 했던 그때의 다짐이 무색하게 어느덧 여름이었다.
10년 전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할머니는 쭉 혼자 살고 있다. 결혼 후 평생 이 동네에서 산 할머니는 도시로 가기 싫단다. 아는 사람도 없고 심심하다고. 젊은 사람이 전부 떠난 마을에 남은 노인들은 매일 복지관에 모인다. 할머니는 새벽에 일어나 아침을 먹고 밭을 돌보고, 복지관에 갔다가 돌아와 저녁을 먹고 텔레비전을 보다가 일찍 잔다. 이것저것 소일거리도 하겠지. 하지만 코로나19 때문에 복지관 문은 여닫기를 반복하고, 할머니 혼자 보내는 시간은 전보다 길어졌다. 금방 온다 하고선 늦게 와서 미안하다고 하자 할머니는 손사래를 쳤다. 바쁜 거 다 안다고, 바쁜데 어떻게 오냐고. 놀 거 다 놀고 가고 싶은 곳 다 가는 나는 민망해서 대꾸하지 않았다. 할머니는 내가 정말 바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니까 더더욱 찔렸다.
강과 마주한 좁은 쪽마루엔 낡은 소파가 하나 있다. 남향이라 눈이 찌푸려질 만큼 볕이 쏟아지고, 할머니와 소파에 나란히 앉아 강을 바라봤다. “되게 좋다. 이렇게 혼자 앉아 있을 때 있어?” 묻자 “그럼” 무심히 대답하는 할머니.
장독대 앞으로 고양이 한 마리가 유유히 나타나더니 웅크리고 앉아 볕을 쬔다. 그 풍경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이름이 뭐냐고 묻자 모른단다. 마당 한구석엔 음식이 담긴 그릇이 보인다. “고양이 밥 줘? 고양이 싫다며!” “밭에 있는 거 자꾸 훔쳐 먹고 헤집는데 어떡하냐. 밥 주는 게 편하지.” 그래서 눌러앉아 버렸구나. “서울에선 밥 주는 거 싫다고 막 그릇도 없애버리고, 괴롭히고 죽이는 사람들도 있어.” 할머니는 진심으로 이상하다는 듯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는다. “살아 있는 걸 왜 죽인다냐?” 나야 모르지….
할머니와 대화하는 건 늘 재밌다. 여든 살이 넘었어도 말하기보다 들어주는 할머니. 한참 어린 손녀의 검열 없는 칭얼거림도 진지하게 듣는 할머니. 내 문신을 보고도 그냥 “안 아팠어?”라고 물을 뿐이고, 결혼하고 아기도 낳으라는 말에 “결혼은 할 수 있어도 아기는 절대 싫어. 너무 아프고 아토피 옮길까 봐 무서워”라고 답하면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할머니. 그 와중에 남 욕은 절대 안 한다. 엄마가 안 와서 서운하지 않냐고 묻자 “엄마가 운전을 잘 못하니까 백 서방이 와주면 좋은데 바쁘니까 잘 못 오지”라기에 내가 “바쁘긴 뭘 바빠. 썩을 놈이지”라고 답하면 정색하며 “아빠를 그렇게 말하면 못 쓴다!”고 말하는 할머니.
밤이 왔고, 이가 좋지 않은 할머니를 위해 부드러운 쇠고기와 피자, 맥주를 사왔다. 쇠고기를 먹으며 내가 “딸보다 손녀가 낫지”라고 묻자 환하게 웃으며 손녀가 백번 낫다고 한다. 엄마만큼 편한 할머니 앞에서 나는 순식간에 맥주 피처 두 통을 비웠고, 할머니는 기겁하며 안주라도 먹으라며 과자를 들이밀었다. “살쪄서 안 돼. 나는 술이랑 물만 마셔”라고 하자, 기겁하며 그러면 속 다 망가진다고 “살기 좋은 세상 건강하게 오래 살아야지”라는 말에 나는 발끈했다. “뭐가 좋은 세상이야. 왜 살기 좋은 세상이냐고!” 소리치자 할머니는 아무렇지도 않게 답한다. “집에서 똥 싸잖여!”
생각지도 못한 대답에 나는 ‘빵’ 터질 수밖에 없다. “집에서 똥 싸면 좋은 세상인 거야?” “그럼! 예전에는 아무리 추워도 다 밖에 있었고, 뜨거운 물도 안 나왔어. 새벽마다 일어나서 가마솥에 물 데워 날랐다고. 그러니까 좋은 세상이지.” 할머니는 열변을 토했다.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나는 할머니를 만나면 계속 묻는다. 그게 뭐든 묻고 또 묻는다. 내게 질문은 관심이고 사랑이다. 그리고 도와달라는 절규이기도 하다. 삶을 어떻게 사는지 몰라서 자꾸 누군가의 답을 찾고 싶은 것이다. 내가 알고 있던 답도 잊어버린 채 자꾸 새로운 답을 찾아 헤맨다면, 할머니는 이미 알고 있는 답을 꾸준히 들여다볼 수 있는 사람이다.
삶을 경멸하는 만큼 사랑하는 나는 할머니의 말 앞에 대부분 무너진다. 고양이가 싫다면서 굶어 죽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명의 소중함을 당연하게 여기는 모습을 보면서. 이제 익숙해질 법한, 집 안에 화장실이 있는 것도 여전히 감사하며 좋은 세상이라고 말하는 할머니 말에 반기를 들 수가 없다.
자기 전엔 할머니가 좋아하는 트로트 가수 프로그램을 함께 봤다. 나는 또 할머니를 놀리고 싶어서 “○○이는 실력이 별로인 거 같은데”라고 말하면, 할머니는 또 정색한다. “그 많은 사람 중에서 7등 안에 든 사람이다.” 나는 할머니를 안으며 장난이라고 맞장구를 쳤다.
다음날 반려견 부기가 아프다는 소식에 예정된 시간보다 훨씬 일찍 집을 나섰다. 나는 금방 오겠다고 하고 할머니는 알았다 했지만, 기약 없는 말이라는 걸 할머니도 알 것이다. 내가 할머니의 그늘을 읽을 수 있는 날이 올까? 아무리 그늘을 물어도 답해주지 않는 할머니, 알면서도 모른 척하는 나인데. 내게 올여름의 할 일은 딱 두 번 더 할머니 집에 가는 거다. 내가 알고 싶고 얻고 싶은 것만이 아닌 할머니의 그늘을 묻고, 답해 주지 않아도 읽어낼 것이다. 할머니가 내 곁을 떠나기 전에 꼭 그럴 것이다.
백세희 10년 넘게 겪은 경도의 우울증을 솔직하게 써 내려간 에세이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로 베스트셀러 작가에 등극했다. 내 마음을 돌보는 일만큼 동물과 다른 세상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다.
엘르 뉴스레터 '엘르보이스' 구독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