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클럽하우스는 새로운 ‘무엇’이 맞을까? 폭죽과 함께(가입일 기준 일주일 동안 프로필 사진 옆에 폭죽 이모티콘이 붙는다) 초기의 흥분과 중독 상태가 사라지면서 자연스럽게 회고의 시간이 찾아왔다. 코로나 시국의 외향인 프리랜서에게 목소리로 다수와 소통하는 플랫폼은 아무래도 유혹적이었다. 북 토크 진행이나 팔로어들에게 안부를 전하는 인스타 라이브 경험도 많고, 줌으로 친구들과 송년회를 해보기도 했지만 거울 앞에 한 번 다녀오지 않고도 대화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이 엄청난 자유를 주었다. 10대 때부터 PC통신으로 낯선 이들과 채팅하고 라디오에 귀 기울이던 세대의 특성도 이 플랫폼의 특징과 맞았다.
그럴듯한 사람들이 얘기를 나누는 방에 들어간다 해서 반드시 그들의 전문 분야에 대한 통찰을 듣는 건 아니었다. 더러 반짝이는 이야기를 만나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기획이나 편집 없이 정제되지 않은 음성 정보를 오래 들으며 핵심을 파악하는 일은 긴 시간이 들고 피곤했다. 하지만 ‘운이 좋으면 뭔가 발견할지 모른다’는 기대감이 자꾸만 이 앱을 켜게 만들었다. 앱마다 유저들이 그 안에서 더 오랜 시간을 보내게 만드는 다양한 장치를 고안할 텐데, 클럽하우스는 대화방이 언제 생겨서 얼마나 지속됐는지 알 수 없는 점이 그런 트릭 같았다. 마치 시간의 흐름을 잊도록 백화점에 창문을 설치하지 않는 것처럼.
작은 무대를 여러 개 가진 음악 페스티벌을 돌아다니던 때가 떠올랐다. 지금 라이브를 보고 있으면서도 옆 텐트의 DJ가 어떤 음악을 트는지, 옆 푸드 트럭에서 파는 맥주는 무슨 맛인지, 옆 화장품 홍보 부스에서 나눠주는 샘플은 뭔지 궁금해서 자꾸 방방마다 드나들며 떠돌게 된다. 대화가 실시간으로 흘러가버리면 다시 들을 수 없으니 “거기 별것 없었어”라고 말하기 위해서라도 직접 시간을 들여봐야 하는 것이다. ‘FOMO(Fear of Missing out; 뒤처지는 기분에 대한 두려움)’라는 게 이런 감정일까? 내가 빠진 술자리가 재미있을까 봐 초조함을 느끼던 시절은 20대 초반으로 끝난 줄 알았는데 말이다.
초대를 기반으로 새 가입자를 받고, 안드로이드 폰으로는 아예 접근할 수 없는 클럽하우스가 지나치게 배타적인 서비스라는 지적도 맞다. 텍스트 입력이나 자막 서비스가 제공되지 않기 때문에 청각 장애인은 사용이 어렵고, 듣고 말하는 일은 가능한 시각 장애인 역시 화면을 해독해서 접속하는 과정 자체가 문턱이다. 장애인들이 이 서비스에서 배제되는 현상에 대해 클럽하우스 안에서도 토론방이 열리는 데 대해 위선적이라는 지적도 있다(하지만 아예 논의되지 않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누군가 혐오 발언을 하면 즉시 신고할 수 있다지만 ‘북한 사투리로 얘기합시다’처럼 방향 자체가 차별적인 대화방이 열리기도 하는 등 석연찮은 구석이 많다.
클럽하우스를 앞으로 계속 이용한다면 아마 그 공간에서 확인하는 다른 여성들의 존재 때문일 것이다. ‘목소리를 낸다’는 말이 자기 의견을 표현하는 행위의 비유로 쓰이는데, 클럽하우스에서는 물리적으로 그렇다. 많은 여성이 다양한 주제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개발자, 디자이너 등 직군별로 교류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현실세계에서는 나이나 성별, 직업적 권위에 따라 발언권이 불공정하게 배분되기도 하지만 적어도 클럽하우스에서는 말하고 공감하고 정리하는 언어능력이 뛰어난 젊은 여성들이 인기 있는 모더레이터로 활약하며 토론을 주도한다. 한편으로는 한국의 토론 교육 부재를 클럽하우스에서 실감하기도 한다. 클럽하우스는 모두를 위한 말하기 훈련의 장이 될 수도 있을까? 누구나 관심 있는 어젠다를 설정해 대화방을 만들고, 손을 들어 발언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이 공간에서 수평적인 대화를 연습할 수 있다면 다행스러운 일일 것이다.
자신이 SNS 세대이기도 한 미국의 1986년생 작가 지아 톨렌티노는 〈트릭 미러〉에서 온라인 무대 위에 모두가 올라 있고 쉴 시간 없이 계속 다른 사람 앞에 자아를 연출해야 하는 현대인의 상태를 ‘끝나지 않는 면접’에 비유한다. 초창기라 비교적 청정하게 느껴지는 클럽하우스에도 광고가 붙고, 유료 강연이 생기고, 토론자 사이에 다툼과 인플루언서 마케팅이 개입할 것이다. 그때가 되면 또 권태를 느끼며 새로운 플랫폼을 기다리게 될까? 내게 필요한 것은 또 다른 무대가 아니라 분장을 지우고 쉴 시간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무엇보다 에어팟을 끼고 휴대폰에 내내 귀 기울이느라 동거인과의 대화에 지장받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알고리즘이 자유의지를, 가상현실이 현실을 집어삼키게 해서는 안 될 것 같다.
황선우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저자이자 운동 애호가. 오랜 시간 잡지 에디터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여성의 일과 몸을 둘러싼 다양한 이야기들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