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unsplash
해본 적도 없던 명상을 넷플릭스 콘텐츠를 통해 따라 해보고 있다. 마침 오랜만에 전화 통화를 나누던 친구도 말했다. “얼마 전에 넷플릭스에 들어갔는데 메인 화면에 명상 프로그램이 뜨는 거야. 재미로 해봤는데 이거 좋더라.” 야, 너도? 곤경에 빠진 인간들은 놀랍게도 비슷한 체계로 움직이는구나. 지난해에 주식을 하는 사람들이 무척 늘어났고, 이 현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지만 그 심정만은 이해가 간다. 나도 공부하는 마음으로 아주 소량 투자했었으니까. 비록 초보가 투자한 곳은 주가가 ‘쭉쭉’ 내려간다는 교훈을 얻으며 잊고 살기로 했지만. 신년이니 어쩐지 다이어트도 본격적으로 하고 싶다. ‘집콕’ 시대엔 체지방이 늘고 통장 잔고는 줄어든다. 외로움이 늘고 행복 호르몬 옥시토신이 줄어드는 것처럼.
유난히 좋아하는 인스타그램 계정이 있다. 하루 동안 먹은 비건 식사와 움직임에 대한 사진을 올리는 누군가의 일기 계정이다. 내가 누워서 트위터를 하고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있을 때도 그 계정은 자신이 정한 시간만큼 움직이고 매 끼니를 신경 써서 먹는다. 끼니 사진과 함께 동그랗게 생긴, 하루 움직임의 양을 보여주는 앱 화면이 뜬다. 아, 저것이 애플 워치에 있다는 움직임 링이구나. 이전까지 나는 스마트 워치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회의적이었다. 하루에도 이미 수많은 알람이 스마트폰을 통해 울리는 걸 굳이 손목을 통해서까지 느끼고 싶지 않다고 상상했던 것이다. 그러나 요즘의 나는 출구가 환히 열려 있어도 감옥에서 나갈 생각이 없는 충직한 디지털 노예에 가깝다. 이왕 이렇게 된 김에 이 스마트한 기기에 내 움직임까지 맡겨버리는 건 어떨까. 미묘하고 이상한 기대를 마음에 품고 당근마켓을 통해 미개봉 애플 워치를 거래했다.
‘나이키 런 클럽’을 켜놓은 무선 이어폰을 끼고 워치를 차고 주머니엔 스마트폰을 넣은 중무장 상태로 연남동 공원을 뛰기 위해 집을 나섰다. 20분 달리기 미션을 재생하자 러닝 코치가 활기찬 에너지의 음성으로 인사했다. 마치 내가 러닝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이 된 듯한 기분이 들게 하는 음성이었다. 관심이 없을 때는 거리에서 달리기를 하는 사람들을 보며 ‘힘들겠다. 춥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는데, 살다 보니 내가 정의로운 마음과 헐떡이는 호흡으로 공원을 힘차게 뛰고 있다. 정해진 코스가 5분 정도 남으면 코치가 응원한다. “지금까지 달려온 여러분, 정말 멋집니다. 조금만 더 힘내서 마지막 결승선으로 향할 거예요. 강인하고 멋진 모습으로 골인하는 여러분의 모습을 상상해 보세요.”
취미를 가져보라는 권유를 받은 적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몇 년 동안 일에 몰두하며 살아왔고, 술 마시는 것 외에 즐기는 게 별로 없었다. 성과만 생각하다 보니 내가 무리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했다. 심리 상담을 가면 선생님은 그림을 그리는 것도, 뜨개질도 괜찮으니 일과 상관없는 것을 해보라고 권했지만, 상담실을 나서며 깨달은 것은 내가 취미로 하고 싶을 정도로 궁금해하는 일이 별로 없다는 사실이었다. 무언가를 순수하게 재미있어 하고 좋아하는 감정을 잃어가는 기분. 그렇게 좋아하는 게 없는 사람이 되니, 결국 좋은 노래를 만드는 것이 쉽지 않았다. 일을 계속하고 싶다면 취미 혹은 좋아할 만한 어떤 것을 만들어야만 했다. 그리고 어떤 마음의 준비 없이 다가온 2020년, 일이 줄어든 나는 선물이 없어진 포장지처럼 의아하기만 했다.
지금의 나는 달리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스스로 정한 속도와 목표로 달리고 있으면 가끔 보이기 위해 만들어둔 자신을 잊을 수 있다. 여전히 일을 잘해내지 못할까 봐 불안해하고 다음에 실패할까 봐 초조하지만, 그건 타인의 판단에 맺혀 있는 나의 모습일 뿐. 그 성과와 꽤 상관없이 실재하는 육체는 지금 여기 살아서 심장을 뛰게 하고, 체온을 높여 땀 흘리며 달리고 있다.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했던 것이 전시된 작품 중 하나라는 걸 알게 된 것 같은 기분.
잠들기 전이면 내일의 날씨와 미세 먼지 예보를 기다리며 소풍 가는 아이처럼 두근댄다. 미세 먼지가 적고 영하 5℃ 이하로 내려가지 않으면 잠깐이라도 달릴 수 있으니까. 달리고 싶은, 앞으로 찾아올 계절의 풍경도, 장소도 많다. 내 마음이 침대에 누워 울고 싶을 때 나의 몸이 나타나 ‘영차’ 들어서 소파로 옮겨줄 수 있도록 건강하고 싶다. 이제라도 마음의 친구가 돼주는 나의 몸이 반갑다. 한겨울을 맞은 연남동 공원은 아름다웠다. 오랜만에 보는 넓은 하늘과 하얗게 마른 잔디가 섞인 땅, 가지런하고 키 큰 나무들이 시원하게 들어서 있다. 어딘가에서 둘레가 큰 나무를 두 팔로 꼭 안으면 스트레스를 줄여준다는 뉴스를 본 적 있다. 귀엽고 쓸모없는 뉴스라고 생각했지만, 나도 공원 구석에 있는 나무를 꼭 껴안아보았다.
writer_김사월 메모 같으면서도 시적인 노랫말을 쓰는 싱어송라이터. 2020년에 에세이 〈사랑하는 미움들〉을 썼고, 세 번째 솔로 앨범 〈헤븐〉을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