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말에 내 친구들과의 모임이 허락된다면, 우리 중 누구에게 2020년이 더 힘들었는가 하는 배틀은 의미가 없을 것이다. 누가 더라고 할 수 없이 지구인 모두에게 잔인한 해였으니까. 가벼운 불안과 걱정을 마스크처럼 두르고 살게 된 건 나만의 변화는 아닐 것이다. 생활이 가라앉는다 싶을 때 털어버리고 에너지를 충전할 기회도 부족했다. 사람들과의 모임, 다니던 운동, 좋아하는 공연이 취소되는 동안 삶의 영역이 쪼그라드는 기분이었다. 비행기를 타고 멀리 다녀오는 물리적 여행이 불가능해진 것 이상으로 정신적으로 누릴 수 있는 자유의 범위가 축소된 갑갑함이 컸다. 수입이 줄거나 직장이 문을 닫은 친구, 올해 태어난 아기에게 몇 달 동안 할머니들의 얼굴을 보여주지 못한 친구 앞에서는 이런 갑갑함을 토로하기도 머쓱하다.
나에게만 벌어진 고유한 사건사고도 적지 않았다. 다 써놓은 여행 책은 코로나 때문에 빛을 보지 못했고, 트위터에서는 사이버 불링을 당했고, 11년을 함께 산 고양이가 세상을 떠났으며, 엄마는 인공관절 수술을 받느라 한 달 정도 입원했다. 일에서 큰 성취도 있었지만 그에 상응하는 스트레스가 따랐다. 처음 시도해 본 모바일 플랫폼의 인터뷰 시리즈 ‘멋있으면 다 언니’는 카카오페이지 비소설 부문 최초로 20만 뷰를 넘겼고, 독자나 콘텐츠 업계 종사자들로부터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았다. 하지만 댓글을 확인하는 뿌듯함과 즐거움의 뒤편에는 뭔가 오보나 사고가 있지 않을까 신경이 극도로 뾰족해졌다. 연재 기간 막바지에는 마라톤 후반 레이스처럼 에너지가 고갈되는 걸 느꼈다. 일상을 유지하는 것도 어느 때보다 힘들어서 1시간을 일하면 2시간 동안 침대에 누워야 하는 날이 적지 않았다. 몸과 마음의 노화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거세게 불어오는 올해의 폭풍 속에서도 작은 촛불처럼 빛났던 순간을 떠올린다. 고양이를 화장하고 돌아오던 날 죽을 쑤고 밥을 포장해 와 함께 울어주던 친구들. 봉쇄된 뉴욕에서 고립돼 혼자 생일을 맞은 친구에게 영상통화를 걸어 우쿨렐레와 리코더로 생일 축하 연주를 해주던 일, 불링을 당할 때 나를 변호하고 싸워주던 동거인의 존재, 엄마가 수술실에서 나올 때 느꼈던 안도와 감사…. 프로젝트를 마치고 함께 일했던 사진가에게 편지를 쓸 때 그런 줄도 모르고 있던 내 마음이 문장이 돼 나왔다. “올해의 힘든 일들 속에서 우리가 함께 만들어낸 근사한 것들을 기억하자.”
불행은 밖으로부터, 불가항력적인 힘으로 닥쳐온다. 팬데믹으로 인한 세계의 변화, 예측할 수 없는 사고와 준비되지 않은 이별 혹은 자연스럽지만 낯선 노화나 질병의 영역에 속한 것들 말이다. 내년이나 내후년이 돼도 아마 나쁜 일이 다양한 형태로 닥쳐오는 걸 막을 수 없을 것이다. 반면 행복이라고 부르기에도 너무 작고 소중한 반짝임을 떠올려보면 다른 사람이 호의로 나에게 건네주거나 내가 다른 이에게 다가가려는 노력으로 애써 피워낸 빛들이었다.
언제 다시 코로나 확진자 상황이 나빠질 수 있으니 앞일을 계획하지 않게 된 것도 코로나 이후 생긴 변화다. 12월이 저물어갈 때 친구들과 브라우니를 앞에 두고 마주앉을 수 있다면, 이런 시간을 견디고 적어도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을 한껏 축하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내년을 축복할 거다. 2021년에는 또 우리가 어쩌지 못하는 무슨 나쁜 일이 벌어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있자, 우리가 애써 좋은 순간을 발명해 내자, 서로가 서로에게 좋은 일이 돼주자고.
황선우_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저자이자 운동 애호가. 오랜 시간 잡지 에디터로 일한 그는 여성의 일과 몸을 둘러싼 다양한 이야기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