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 시대를 사람들은 ‘언택트 시대’라고 부르기 시작했지만 사실 이 시대 안에서 비대면 삶을 실천하는 대상은 인간뿐이다. 사람이 사람과 부대끼며 살 수 없는 시대를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내야 할지 모두가 난감해하며,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되자 사람들은 최대한 얼굴을 가린 채 인적이 드문 장소를 보물찾기 하듯 찾아가 숨을 돌리고 있다. 최근 한국관광공사 등에서 발표한 ‘언택트 관광지 100선’의 대부분은 야외, 즉 자연의 곁이나 숲, 바다였다. 사람과는 ‘언택트’하지만 자연과는 그 어느 때보다 ‘콘택트’하는 시대가 돼버린 것이다.
그림과 글이 멋지게 어우러진 〈나무처럼 살아간다〉는 그동안 ‘나무’라고 총칭해 온 생명에게 이름표를 달아준 책이었다. 숲의 나무들의 이야기를 읽은 후 바라본 산은 더욱 흥미롭고 근사해 보였다. 나무 하나하나가 지닌 지혜들. 나무도 다른 나무들과 연대할 줄 알고, 위협을 당할 때는 그에 맞서 움직일 줄도 알며, 심지어 땅에 쓰러진 다음에도 온갖 지혜를 동원해 계속 삶을 이어나간다. 나무는 거의 4억 년 전부터 이 땅에 존재해 왔다고 하니 깊은 지혜를 쌓고 적응과 생존, 번영의 달인이 된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지구 위에 최소 6만 종의 나무가 존재할 수 있었던 이유는 수천 년에 걸쳐 나무들이 각자 자신이 뿌리를 내린 자리의 다양한 환경에 적응했기 때문일 것이다. 갑작스러운 가뭄이나 일시적인 혹한이 닥쳤을 때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는 나무는 우주가 무엇을 던져주든 이를 받아들이면서 예상치 못한 일에 적응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 이유로 나무는 무척 유연한 존재로 진화해 왔다. 나무는 불편함이 종종 성장으로 이어지기도 한다는 걸 되새겨주고 있다.
서어나무는 특별히 높이 자라지도 않고, 화려한 꽃을 피우지도 않으며, 달콤한 과일을 맺지도 않는다. 그저 건강하고 견고하게 수천 년 동안 자기 자리를 지켜왔다. 생존 전문가인 잎갈나무는 위도상 가장 북쪽에서 길고 혹독한 시베리아의 겨울을 견디기 위해 겨울잠을 자며 버틴단다. 지치고 삶이 힘겨울 때 잎갈나무가 권하는 치료법은 바로 휴식이다. 때로는 정공법을 버려야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을 나무도 안다. 무한한 지혜의 소유자, 나무들은 종종 성장을 극대화하기 위해 머리를 쓴다. 호랑가시나무는 위쪽 나뭇가지 잎보다 아래쪽 잎에 가시가 더 촘촘히 박혀 있는데, 아무래도 아래쪽 잎은 위쪽에 비해 지나가던 동물들이 따 먹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굴참나무는 사람들이 나무껍질을 잘라 가도 흔들리지 않는다. 그저 나무는 손상된 나무껍질을 보충하기 위해 묵묵히 일한다. 폭풍우가 지나간 후, 나뭇잎은 언제든 다시 자랄 수 있으므로. 모든 게 계획처럼 순탄할 수 없는 삶 속에서, 막연히 폭풍우가 지나가길 기다리는 것보다 빗속에서 춤추는 법을 찾아야 좋은 삶을 살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책을 덮으면서 딸 나은이와 매년 들르는 화천 목재문화체험장 관장님께서 방문객들에게 늘 해주는 말이 생각났다. “단풍나무 단면 무늬를 보세요. 참 아름답지요. 단풍나무의 나이테는 나무의 성장 과정이 속의 결에 영향을 줍니다. 나이 마흔이 되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잖아요. 나무의 결을 보면서 느낍니다. 우리 삶의 결도 잘 만들어가야겠지요.” 단풍나무의 속 무늬는 물결이 흐르는 모양으로, 옹이가 생긴 자리 안쪽은 잔잔한 수면 위로 돌을 던졌을 때 볼 수 있는 물결 모양을 닮아 있다. 코로나 시대를 통과하는 우리 몸은 어떤 모양을 만들고 있을까.
전지민_ 전 에코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그린 마인드〉 편집장. 강원도에 거주하며 가족과 함께 여성, 엄마로서 지속 가능한 삶을 고민하고 있다.
◆ ‘ELLE Voice’는 매달 여성이 바라본 세상을 여성의 목소리로 전하고자 합니다. 황선우·최지은 작가, 이은재 PD, 뮤지션 김사월 등 각자의 명확한 시선을 가진 여성들의 글을 기대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