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르보이스] 코로나 시대의 운동법

이 위태로운 균형은 언제든 깨어질 것이다.

다니엘 페나크 소설처럼 내 버전 〈몸의 일기〉를 써본다면, 2020년 2월 이후의 챕터는 꽤 암울한 묘사로 채워질 거다. 운동 루틴이 깨졌고, 외출도 활동량도 대폭 줄었다. 웨이트트레이닝을 하러 다니던 헬스장, 월·수·금요일 레슨을 받던 수영장, 화·목·토요일에 배우던 요가 클래스가 모두 8개월째 문을 닫자 애플 워치 링 3개를 채우는 날이 드물어졌다. 운동과 사교활동이 주던 즐거움의 자리를 채운 건 집에서 새벽까지 이어지는 술과 안주였다. 코로나 이전보다 4kg이나 체중이 늘어난 건 당연한 결과였다. 몸은 시간을 겪어내고, 역사를 기록한다. 코로나 시대의 갑갑한 비일상이 바로 내 몸이자 지금의 나였다.

 
약간의 허송세월과 홈트 뒤에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가을부터 달리기를 시작했다. 누적 1300km를 넘기고 나서는 무릎이나 발목이 아파 쉬고 있던 중이었다. 3km 안팎으로 조금씩 다시 뛰어보니 처음 러닝에 빠져들 때가 떠올랐다. 언제 어디서든 누구와 약속하지 않아도 운동화만 신고 달려나가면 되는 간편함이 좋았다. 다른 사람과 접촉하거나 공공시설의 수업에 의존하지 않아도 돼서 코로나 시대의 운동으로도 적합하다. 마스크를 쓰고 달리니 땀이 맺히고 호흡이 힘들며, 입가나 코 주변에 뾰루지가 나기도 하지만 안전을 위해 감당해야 할 불편함이라 여긴다. 운동이 줄어든 생활을 하는 동안 몸도 몸이지만 마음이 움츠러들고 뻣뻣해졌기에 뭐든 해법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달리러 나가던 어느 저녁, 아파트 같은 층 할머니와 마주쳤다. “운동 가나 봐요? 나도 운동 나갔다 오는 길이야.” “와, 요즘도 운동하세요?” “응 그럼, 에어로빅. 우리는 한 번도 쉰 적이 없어.” 할머니를 비롯한 동네 중장년 여성들은 집 앞 운동장에 매일 같은 시간에 모여 에어로빅을 한다. 많을 때는 30여 명, 적게는 10명 남짓한 인원이 트로트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드는 것이다. 이 모임이 계속 이어질 수 있었던 건, 아주머니들의 에어로빅 모임이야말로 거의 비대면에 가까운 활동이기 때문이다. 평일 저녁, 가족들이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난 시간에 밖으로 나온 중년 여성들은 그야말로 ‘용건만 간단히’였다. 정해진 시간에 모여 3m 이상 떨어져 띄엄띄엄 서고, 연단에 선 리더의 동작을 따라 말없이 30여 분 운동한 뒤 ‘쿨’하게 해산한다. 코로나 이전에는 다소 그로테스크해 보였던 그 광경은, 이제는 더없이 합리적이고 지속 가능한 거리 두기 활동으로 보였다.
 
대조적으로, 코로나 시대에 전혀 맞지 않는 방식으로 강행되는 운동 모임도 목격한다. 며칠 전 같은 운동장에 나가 뛰기 시작하는데 믿을 수 없게도 마스크를 한 코끝에 시큼한 막걸리 냄새가 풍겨왔다. 일요일 오전의 무법자들, 조기축구회 남성들이었다. 마스크를 하지 않고 경기를 뛰는 건 너무 당연했고, 경기장 주변의 일행 수십 명이 담배를 피우거나 술과 음식을 나눠 먹기까지 했다. 사회의 축소판처럼 다양한 인물들이 모여 운동하는 체육공원에서 시끄럽게 소리를 지르거나 냄새를 풍기며 규칙과 질서를 해치는 행동을 하는 주체들은 팬데믹 시대 이전에도 거의 특정 성별, 특정 연령대의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딱히 반사회적 의도를 품었을 리는 없다. 다만 타인을 배려할 줄 모르고, 시대에 맞게 변화하지 못하면 그렇게 된다. 늘 하던 대로 모임을 갖고, 늘 하던 대로 먹고 마시면서,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는 자각도 없이 말이다. 운동장 가장자리에서는 마스크를 한 어린이들이 킥보드나 인라인스케이트를 타고 있었다.
 
몸을 움직이며 함께 뛰고 웃을 때 느끼는 쾌감과 친근함은 분명 소중하다. 경기를 같이 즐기고 게임에 참여하면서 쌓이는 아드레날린과 성취감은 밀도 높은 우정을 형성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 시대에는 친목 운동 모임보다 더 시급하고 중요한 가치들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생명이라든가 생계 같은 묵직한 단어들, 문을 열지 못했던 영업장이나 학교에 가지 못하는 아이들을 먼저 떠올려야 한다고. 10월 12일부터 방역 단계가 1단계로 완화됐다. 2단계와 2.5단계를 거쳐봤기에 지금 상태가 지속적인 안전이 아니라는 걸 몸으로 안다. 거리 두기를 무시하고 위생 지침을 어기는 사람들이 늘어나면 이 위태로운 균형은 언제든 깨어질 것이다. 새로운 운동 루틴을 만들어가며 나는 8개월이나 걸려서 서서히 받아들이는 중이다. 이 시대가 완전히 종식되기 전까지는 개인이 몸과 마음의 건강을 지키는 일 역시 위태롭고 어려우며 영영 고독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혼자 달리면서 이것이야말로 타인들과 건강하게 연결되는 방식이라 생각한다. ‘코로나 시대에 연대하는 방법은 모두가 흩어지는 것’이라는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의 금언은 몇 단계이든 간에 누구에게나 유효하다.
 
황선우_〈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저자이자 운동 애호가. 오랜 시간 잡지 에디터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여성의 일과 몸을 둘러싼 다양한 이야기들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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