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비관 비슷한 희망
」우울한 한국 사회를 참지 못한 나의 친구 몇몇은 외국으로 떠났다. SNS를 통해 친구들이 기록하는 이국의 햇살과 새로운 형식의 생활, 다른 문화를 살아가는 모습들을 보면 왠지 대리만족이 됐다. 삶이 힘들 때 ‘여기보다 나은 곳이 있을지도 몰라’ 하고 헛된 상상을 하면 기분이 좀 나아지는 것 같기도 했다. 이제는 코로나 때문에 유효하지 않은 이야기지만 말이다. 코로나 시대가 장기화되면서 느끼는 우울감을 ‘코로나 블루’라 부른다고 한다. 병에 걸리는 것에 대한 걱정과 강박부터 코로나가 바꿔놓은 일상과 수척해진 경제에서 느끼는 무력감 모두 포함한다. 이런 감정을 지금 느끼지 않을 이가 어디 있을까. 나 역시 새벽에 가까운 시간에 잠들지 못할 때마다 무력감과 불안함을 느낀다. 그럴 때 평정을 찾기 위해 노력하기는커녕 기후 변화와 전염병에 대한 유튜브와 넷플릭스 다큐멘터리를 집착하며 찾아본다. 코로나 바이러스 이전의 시대로 돌아갈 수 없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그게 참 머리로는 알겠는데 아직도 현실 부정 중인 것 같다. 인간이 내뿜는 탄소 배출량의 증가로 지구 온난화는 되돌리기 어려울 정도로 진행됐고, 그로 인한 환경 파괴로 인간은 야생에 속하거나 빙하 속에 갇혀 있던 위험한 바이러스를 만나게 됐다. 이것은 인류가 자초한 일이다. 하도 많이 봐서 여기까지 다 알고 있는 내용인데도 계속해서 보게 된다. 전 세계가 지구 환경 회복을 위해 노력해도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인간들은 아직 별 대책을 세우지 못하거나 시도조차 하지 않고 있고, 이런 암울한 상황을 총체적으로 생각하면 마치 인류 종말이 눈앞에 있는 것만 같다. 이 세상에서 내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무슨 쓰임으로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 이런 감정도 코로나 블루일까?
최근 앨범을 낸 친구가 알려주길 이제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에 대한 우려로 공연을 하기 쉽지 않고 자신이 방송 매체에 나오는 음악가도 아니기 때문에 새 앨범을 내도 딱히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했다. 아주 예전부터 음악가들은 자신의 음악을 필요로 하는 곳으로 자신을 보내고 싶어 했다. 원하는 색으로 채울 수 있는 차가운 공연장, 귀여운 카페와 책방으로. 뜨거운 여름에 땀 흘리며 시원한 걸 한 손에 들고 낯선 사람들과 뛰노는 신나는 페스티벌로. 혹은 다른 나라에 살고 있는 완전히 새로운 사람들에게로 음악가들은 떠나고 싶었다. 음반과 음원에 그런 자신을 담아 이 음악이 필요로 하는 곳으로 도착하기를 기대하며 홍보했다.
사람들이 자유롭게 모이거나 떠날 수 없게 되면서 온라인 공연 시도들이 있었다. 비교적 촬영과 송출을 위한 인력과 기반이 있는 예술 공연장들이 유의미한 시도를 해볼 수 있었다. 우리네 인디 뮤지션들은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을 통해 집이나 빈 공간에서 라이브를 해보고 있었다. 저화질과 저음질로 인해 공연장에서 음압과 에너지 좋은 밴드들은 좀 더 불리해졌다. 음악가와 관객들이 한 공간에서 주고받는 집중력이 없어지기에 고화질 고음질이라 해도 온라인 공연의 매력을 찾으려면 서로 적응 기간이 필요할 것 같다. 그리고 티켓값을 받아야 하는지, 얼마나 받아야 하는지 정말 모르겠다. 온라인 공연보다 잘 만든 라이브 컨셉트 영상이나 뮤직비디오가 낫지 않냐는 의견에도 어찌 답해야 할지 솔직히 모르겠다. 그래도 나는 가끔 인스타그램 라이브를 켜고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른다. 예전에도 인스타그램 라이브를 하긴 했지만 지금은 다른 애틋함이 있다. 어딘가 관객들과 기약 없는 ‘롱디’ 연애를 하는 것 같다. 서로를 그리워하고 보고 싶다고 말할 수 있다는 점에서 조금은 나은 걸까.
“뭐야, 이제 망했네요” 하며 친구 음악가와 공통된 고민을 답답하게 공감하고 있는데 묘하게도 혼자 불안할 때보다 나은 기분이 들었다. 음악을 하기에 참 비관적인 상황인데 음악을 더 많이 만들고 노래를 거세게 부르고 싶은 이 기분은 무얼까? 앞으로 대비할 수 없는 미래 앞에서 정말 하고 싶었던 작업을 세상에 더 남기고 싶은 반항 비슷한 애착 같기도 하다. 나에게는 나의 삶을 사랑할 수 있는 가장 파워플한 행위가 음악을 하는 것이다. 나를 위하는 김에 나랑 비슷한 결의 다른 사람도 위할 수 있으면 좋겠다.
요즘 나도 예전보다 집에 오래 있는다. 아침에 일어나면 환기하고, 식사를 준비하고, 가끔 유튜브를 보며 스트레칭이나 운동을 한다. 일상을 지키는 그 시간 이외의 대부분의 시간은 음악 장비들이 있는 방에서 보낸다. 나는 새로운 앨범을 만들고 있다. 팬데믹 이후 우리는 매우 비슷한 괴로움을 느끼고 같은 희망을 꿈꾼다. 일상을 되돌리기를, 소수자가 차별받지 않기를, 환경이 회복될 수 있기를 모두 간절히 바란다는 점에서 비관 비슷한 희망을 얻는다. 같은 세상에서 비슷하게 버티고 있는 우리를 보면 더 억세게 살아남고 싶다. 서로가 서로를 버티게 해줄 것이다. 가장 자신다운 모습으로 우리에게 남은 세상을 함께 목격하기를.
writer_김사월
포크 듀오 김사월×김해원의 〈비밀〉로 데뷔한 이후 솔로 앨범 〈수잔〉과 〈로맨스〉로 ‘최우수포크음반상’을 연이어 수상했다. 메모 같으면서도 시적인 노랫말을 쓰는 싱어송라이터로 최근 에세이 〈사랑하는 미움들〉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