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르보이스] 사랑받아야 하는 우리들

어느 밤, 보디로션 향을 깊게 들이마시며 생각했다. '나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은 아닌 것 같아.'

 

사랑받아야 하는 우리들

어느 밤, 하루를 마무리하는 보디로션을 바르고 있었다. 향을 두 손에 받고 코로 숨을 깊게 쉬며 생각했다. ‘나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은 아닌 것 같아.’ 자조한 것은 아니었다. ‘오늘밤 다들 사랑받겠지. 그렇지만 나는 아니야’라고 평소 자주 가던 길로 나간 자책도 아니다. 다만 거울 속에 비친 한 생물은 좋은 향을 맡고 싶어 했고, 따뜻한 수건을 원했고, 이대로 달콤한 잠에 빠져들기를 바라는 존재처럼 보였다.
 
뮤지션이라는 직업 특성상 많은 사람 앞에서 공연하며 살아가지만, 여전히 사람 앞에 서는 것이 떨린다. 좀 더 정확하게는 소수의 사람들 앞에서 말할 때 떨린다. 집중되는 분위기를 느끼면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 것 같다. 마치 몹시 배고팠던 사람이 파티에서 맛있는 음식을 만났을 때의 당황스러움과 같다. ‘천천히, 아무렇지도 않게 먹어야 하는데….’ 적당하고 재치 있고 상대에 대해서도 호감을 갖게 만드는 말을 하고 싶다는 욕심과 조바심이 마구 든다. 그럼 엉뚱하고 어리석게 굴기 딱 좋은 상태가 되는 것이다. 사랑받고 싶은 나는 참 비참해 보였다. 다른 사람에게 사랑받기 위해 노력해 본 사람이라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의 마음을 얻기 위한 노력은 감히 사람의 마음을 노렸다는 이유로 더 큰 허무함으로 돌아온다는 걸.
 
운 좋게 잠깐 환심을 얻었다 해도 내 노력과 그 사랑은 관계가 있는 것만 같아 어떻게 더 노력해야 할지 초조하다. 하루가 다르게 식어가는 인간에게는 비싼 선물도, 종일 근사하게 보내는 데이트도, 밤새워 만든 노래도 소용이 없다. 그런데 이토록 사랑에 전전긍긍하는 나는 놀랍게도 매정한 ‘사랑쟁이’다. 머리 모양이 마음에 들었다는 이유로 몇 달을 끙끙 앓으며 사랑하다가 샤워 코롱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마음이 휙 돌아선다. 그 간극 안에 상대의 마음이랄까,  그런 건 없다. ‘어차피 나 안 사랑하는 거 아니었어?’ 사랑하는 건 너무 쉽고, 서로 사랑하는 것은 내가 못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내가 사랑하고 사랑받는 방식은 이상한 보복 같은 것으로 채워져 있는 것 같다. 사랑받지 못한 기억에 갇혀 앞으로 사랑받을 일들까지 망치고 싶지는 않은데.
 
자기중심적이고 거만한 사람을 이유 없이 사랑해 본 적 있다. 내 립스틱 색깔이나 음반 판매 성적과 상관없이 나를 사랑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왜 나를 사랑했을까? 쑥스럽게도 사람들은 그냥 나를 사랑했을 것이다. 나 역시 누군가이기에 사랑했듯이. 사랑받기 위해 태어나지 않았다고 느꼈던 그 밤, 이런 나라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느꼈다. 아무리 노크해도 열리지 않는 문. 짝꿍을 선택하는 데 가장 마지막 순서까지 남겨진 날, 혼자 떠밀려 내려진 8차선 도로에 서 있던 기억 같은 게 우리를 서로 알아보게 만들었을까. 빙빙 돌아도 혼자가 되는 인간의 삶에서 내 삶을 들어주는 이를 찾아 헤매던 우리들은 서로를 듣기로 결심했다.
 
그래. 아무도 우리 이야기를 안 들어주고 안 궁금해 하면 우리가 우리 이야기를 들어주고 궁금해 하자. 오늘 아침까지 무슨 꿈을 꾸었는지. 지난 새벽에는 왜 토를 했는지. 어젯밤 SNS에 올린 글은 무슨 의미였는지. 요즘 무슨 음악을 좋아하는지. 무엇이 두려운지. 서로의 삶을 궁금해 하고 그것을 들으며 기뻐하는 것. 서로에 대한 안전함을 느끼며 티격태격 장난치는 것. 그게 너무 필요해. 네가 잊을 때마다 계속 듣겠다고 약속할게. 사랑한다는 의미야. 그리고 나도 사랑받고 싶다는 의미야.
 
사랑받아야 하는 우리들은 모여서 각자가 받은 사랑과 미움을 꺼내보고 돌려보고 장난치고 컵 받침으로 쓰다 아침이 밝아오면 집에 온다. 매번 헌신하다 매번 버려지는 당신도, 갖은 평가에 미쳐버릴 것 같았던 당신도, 매일 저울 위에 올라서서 수치를 노트에 적는 나도, 우리는 사랑받아야 하는 우리들이다.
 
WRITER 김사월 포크 듀오 김사월×김해원 〈비밀〉로 데뷔한 이후 솔로 앨범 〈수잔〉과 〈로맨스〉로 ‘최우수포크음반상'을 연이어 수상했다. 메모 같으면서도 시적인 노랫말을 쓰는 싱어송라이터로 최근 에세이 〈사랑하는 미움들〉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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