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르보이스] 어른들을 위한 조금 불편한 동화책

이 동화들을 읽으면 겁이 난다. 반성문을 써야될 것처럼 마음을 무겁게 만드는 동화들을 지금 어른들이 읽어야 하는 이유.

 
기후 변화나 환경 문제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지 않은 사람을 찾아보기 힘든 요즘이다. 그러나 환경보호를 위해 나름 최선의 노력을 하는 나 또한 어쩔 수 없이 쓰레기를 만들고, 교통수단을 이용하며, 갖가지 에너지 자원을 사용하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지구의 남은 수명을 걱정하면서도 막상 ‘불편함’을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오면 망설여지는 것이다. 인간은 태어난 이상 자연에 빚을 지지 않고 살 수 없다지만, 요즘은 그런 핑계를 대기에도 조금 머쓱한 구석이 있다. 바로 어른들이 막연하게 미래의 주인공이라 불렀던 ‘아이들’이 지구를 지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모습을 볼 때다. 이들은 어른으로서 응당 가져야 할 책임감을 일깨워준다.
 
그 선두에는 단연 스웨덴 출신의 16세 소녀, 그레타 툰베리가 있다. 2018년 8월 학교에 가는 대신 스웨덴 의회 앞에서 지구 온난화 대책 마련을 촉구하며 1인 시위를 벌인 툰베리의 주장에 공감한 세계 100개 이상의 도시에서 학생들은 매주 금요일마다 등교를 거부하고 거리로 나왔다. ‘기후파업(Climate Strike)’은 ‘미래를 위한 금요일’이라는 이름의 대규모 환경운동으로 발전했다. 지난 9월 미국 뉴욕에서 열린 UN 기후행동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친환경 태양광 요트를 타고 2주에 걸쳐 바다를 건넌 그레타 툰베리의 행동은 ‘편리한’ 세계에 머물고자 하는 기성세대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결단이다.
 
그레타 툰베리가 최초는 아니다. 1992년 리우데자네이루 UN 환경선언에서는 세번 스즈키가 5분간 진심 어린 호소와 발표로 어른들에게 깨달음을 안겼다. 현재 두 아이의 엄마인 그녀는 여전히 환경운동가로 활약 중이다. 2007년 인터넷에 환경보호를 주제로 한 동화 〈고 그린맨 Go Greenman〉을 연재해 큰 관심을 받았던 한국계 미국인 조너선 리, 2011년 빨대 소비를 줄이자는 운동을 제안한 10세 소년 마일로, 녹조를 걱정하며 정화 로봇을 발명한 홍준수 어린이 등. 훼손되기 이전의 자연을 제대로 경험하지 못했음에도 지구와 생물을 지키기 위해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이들을 보면 언젠가부터 ‘왜’라는 질문을 멈춘 어른의 관성을 깨닫는다. 그래서 올해 목표 중 하나로 정한 것이 있다. 바로 아이와 함께 환경 동화책을 찾아 함께 읽는 것. 내가 책을 읽으면 아이는 물음을 던진다. “엄마, 멸종 위기가 뭐야? 동물들이 다 멸종 위기래.”  
 
동화는 어린이를 위해 지어낸 이야기다. 아이는 이야기 속 주인공과 함께 매일 조금씩 두려움과 불안을 극복하며 세상으로 나아간다. 소설가 김영하 또한 이에 대해 말한 바 있다. 동화의 목적은 ‘아이들에게 겁을 주기 위한 것’으로, 모든 동화는 세상을 배우고 조심하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이와 책을 읽으며 다 큰 어른인 나 또한 겁이 났다. 때로는 반성문을 쓰는 느낌마저 들었다. 그래서 무슨 책을 읽었냐고?
 
〈플라스틱 섬〉(상출판사)은 바다로 흘러간 플라스틱이 해류의 영향으로 바다에서 빙빙 돌며 한국 면적의 14배에 달하는 섬 모양을 이룬 것을 바닷새의 관점에서 펼쳐 나가는 이야기다. 〈고래를 삼킨 바다 쓰레기〉(와이즈만 북스)는 조금 더 심각하다. 바다 쓰레기가 어떻게 해양 생태계를 황폐하게 만드는지, 인간에게 어떤 위협을 가하며 우리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를 어린이도 이해할 수 있는 친절한 설명과 함께 전한다. 빗물을 모아 다시 쓰고, 수도꼭지를 잠그는 일상의 실천을 통해 아이들은 물론 나 또한 깨끗한 물의 중요성과 소중함을 새삼 깨닫게 되는 〈맑은 물이 좋아요〉(공상공장), 아프리카 케냐에 살고 있는 11세 소년을 주인공으로 초원의 동물들이 비닐봉지를 먹고 죽음을 맞이하는 현실을 그린 〈비닐봉지가 코끼리를 잡아먹었어요〉(사계절)도 있다. 실제로 케냐에서는 2017년 8월부터 비닐봉지 제조와 사용을 금지하는 법안을 시행하고 있다고 한다. 동화책이 아니었다면 미처 알지 못했을 사실이다.  꽁꽁 문을 닫고 모두가 에어컨을 틀어놓은 여름밤, 이러다 달까지 녹아버리겠다는 상상력을 사랑스러운 동화로 그린 백희나 작가의 〈달 샤베트〉(책공장)는 또 어떤가.  매일 새로운 물건이 쌓이는 부자 동네와 멋진 아이디어로 버려진 물건을 재탄생시키는 크링겔 아저씨의 집 풍경을 대비시키며 재활용이 단순히 버린 것을 활용하는 게 아니라 꼭 필요한 물건을 구입하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임을 상기시켜 주는 〈재활용 아저씨 고마워요〉(풀빛)는 어쩌면 물욕에 사로잡힌 어른에게 더 필요한 책일지도 모른다.
 
주변을 탐색하고 적응하며 성장하는 시간은 사람에게 꼭 필요하다. ‘물성’을 배워야 할 시기에 깨끗한 흙을 밟고 만지고, 맑은 공기를 머금은 바람을 들이마시며, 미세 먼지에 가려지지 않은 햇살을 만끽할 기회를 놓친 내 아이에게 환경 동화를 통해서라도 원래 자연이 어때야 하는지 알려주려 한다. 앞으로 살아가며 맞이할 위기에 대처할 수 있는 태도 또한 배울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아이가 어른의 스승이다’라는 오래된 경구처럼 나 또한 아이를 통해 미래의 희망을 본다. 돌잡이하던 날, 청진기를 잡은 나은이에게 말했다. “사람만 고치는 의사가 아닌, 아픈 지구를 살리는 사람이 되렴.” 그리고 옳은 방향으로, 지금보다 좀 더 속도를 내 함께 달리는 어른이 많아지길 기대한다. 아이들과 우리가 살아갈 앞으로의 나날을 위해.
 
writer 전지민
전 에코 라이프 스타일 매거진 〈그린 마인드〉 편집장. 지금은 강원도 화천에서 가족과 함께 여성, 엄마로서 지속가능한 삶을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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