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랑으로 이어진 벽돌의 도시, 볼로냐 #여행예술 || 엘르코리아 (ELLE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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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랑으로 이어진 벽돌의 도시, 볼로냐 #여행예술

회랑만 따라 걸어도 도심을 탐험하게 되는 이탈리아의 볼로냐는 특유의 활기와 함께 '오늘의 삶'을 그려낸다.

이경진 BY 이경진 2023.09.28
 

BOLOGNA

태양을 잠식한 회랑 아래에서
 
 
 
 
7월, 이탈리아의 한여름을 제대로 마주하기 위한 도시로 볼로냐를 택한 건 회랑으로 이어진 벽돌의 도시, 움베르토 에코 그리고 조르조 모란디라는 몇 개의 단서 때문이다. 굴리엘모 마르코니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20여 분을 달린다. 붉게 물드는 창밖 풍광, 1000년 된 벽돌이 만든 도심으로 들어서자 한때 100여 개가 있었다는 두 개의 탑이 볼로냐의 좌표를 분명하게 한다. 탑 근처 작은 호텔 ‘리버티 하우스(Liberty House)’에 체크인했다. 아파트 한 층에 네 개의 룸을 운영하는 아담한 호텔로, 각기 다른 디자인의 방과 널찍한 욕실이 마음에 들었다. 미식의 도시에 온 만큼 허기가 빨리 찾아왔다. 호텔 근처의 유명 레스토랑 스폴리아 리나(Sfoglia Rina)에는 점심 전부터 줄이 늘어서 있었다. 볼로냐에서는 모든 파스타를 생면으로 내놓는데, 이곳 역시 우리가 ‘볼로네세’라 부르는 탈리아텔레 알 라구가 유명하다. 토마토와 쇠고기를 푹 끓여낸 진한 소스가 농밀한 풍미를 낸다. 리드미컬하게 거니는 사람들, 크고 작은 상점들, 회랑을 따라 도시의 오늘이 흘러가고 있었다. “볼로냐에선 회랑만 따라 걸어도 도심을 탐험하게 된다”는 어느 작가의 말이 떠올랐다. 건물 1층에 대리석과 아치로 이뤄진 회랑이 볼로냐 도심에 40km 넘게 이어진다. 무더위가 모든 감각을 장악했지만, 그늘이 돼주는 회랑의 존재는 여름에도 빛을 발한다. 밤 9시가 넘어서야 비로소 와인을 곁들인 긴긴 저녁을 시작하는 사람들, 마조레 광장의 커다란 화면에서 밤의 영화가 켜지면서 달궈진 대기는 서서히 밤바람과 함께 사라진다. 화석같이 신비로운 로마, 르네상스적 기운을 강렬하게 내뿜는 피렌체와 달리 볼로냐는 특유의 활기와 함께 ‘오늘의 삶’을 그려낸다. 모란디에게 볼로냐는 하나의 세계이자 은신처였다. 그는 볼로냐 밖으로 나가는 일도 드물었다고 한다. 여행이 주는 감흥이 일상에 여진을 남긴다는 이유에서다. 평생 세 평도 안 되는 작업실에서 정물화처럼 고요하게 그리고 끊임없이 먼지 같은 시간을 쌓아나갔다. 볼로냐 현대미술관(MAMbo)에는 모란디의 전시실이 따로 마련돼 있다. 가느다란 물병과 찻잔, 그릇, 이따금 꽃 한 송이가 비슷한 듯 다르게 변주된다. 나란한 침잠 속에서 물체들의 미묘한 높낮이가 느껴지는 리듬과 변곡, 절대성이야말로 세상에서 은둔한 작가의 세계가 아니었을까. 그의 집은 주말에만 공개된다. 여전히 두꺼운 먼지와 빈병들이 그 자리에 놓여 있을까? 도시의 궤적을 한 예술가로부터 그려가는 것만큼 애틋한 일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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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에디터 이경진
    글 박선영
    아트 디자이너 정혜림
    디지털 디자이너 민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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