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에 오픈한 쿼크커피바는 등장과 동시에 주목받았습니다
에스프레소 바는 빨리 마시고, 빨리 움직이는 공간이잖아요. 규모도 그렇게 클 필요도 없지만, 쿼크커피바는 본점 개념으로 만든 공간이었어요. 클라이언트는 한국적인 것을 좋아한다고 말했고, 딱 그것까지만 단서가 있었어요. 그렇다면 한국적인 것과 커피를 어떻게 접목할까 하는 고민이 필요했죠. 저희는 커피 역사를 파고들었어요. 한국 커피가 고종황제 때 들어왔다는 게 보편화된 이야기인데 좀 더 찾아보니 그전부터 서민들이 한약처럼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는 거예요. 어쨌든 커피믹스부터 스타벅스까지 한국에 널리 퍼진 커피 문화를 살펴보니 우리의 커피 역사도 상당히 오래됐더라고요. 100년 넘는 문화를 그저 서양의 문화라고 말할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여기서부터 쿼크커피바의 공간디자인이 시작됐습니다. 커피를 한국의 본질과 미학 사상으로 접목했어요.
공간을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직접적으로 와 닿는 부분이 실내잖아요. 보통 건축가들이 외부 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건축에 얹으면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면, 저희는 실내부터 디자인해요. 사실 설계가 끝날 때까지 클라이언트가 건축 형태를 모를 때가 많아요. 공간 내부부터 차근차근 외관으로 뻗어 나가거든요. 계속해서 이야기를 나누면서 클라이언트 머릿속에도 우리 집이 어떻게 생길지 3D로 펼쳐져요.
스테이이자 건축주의 집인 취호가도 고객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습니다
저희가 맡은 프로젝트에 대해 설명하려면 항상 클라이언트의 삶을 같이 이야기해야 해요. 모든 것은 거기서 시작하거든요. 취호가는 서울에서 귀촌한 분들의 집이자 스테이 공간이고, 저희와 만났을 때 호명리라는 이름을 가진 땅을 구입해야 할지 고민하고 계셨어요. 남편 분이 어릴 때부터 가장 좋아했던 가수가 드렁큰타이거였다고 하더라고요. 부부는 호명리가 ‘호랑이가 울던 마을’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어서 마음이 갔대요. 그런데 1000평 규모의 땅 주변에 아무것도 없어서 고민하고 계셨죠. 저희는 오히려 그래서 우리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도시생활에 지친 부부의 삶에 대한 치유이자 이곳 방문자에게도 에너지를 줄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었어요.
저희만의 생각으로 오랜 시간 쓰일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는 어려워요. 머무는 사람의 이야기가 깃들어야 5년이고, 10년이고, 15년이고 오랫동안 지속할 수 있는 공간이 될 수 있어요. 취호가는 호스트들의 에너지가 맑아야 지쳐서 이곳까지 찾아온 사람들도 에너지를 전달할 수 있다는 기준으로 집 설계에 더 집중한 공간이에요. 부부가 애정하는 호랑이를 건축 요소에 녹이기 위해 콘크리트 표면을 치핑 마감해서 호랑이의 두루뭉술한 털을 표현했고, 또 중앙 리셉션 건물 위의 붉은 구조물은 빗물이 모여 비 오는 날에는 폭포처럼 떨어지게 만들었죠. 물줄기 뒤로 공간 안에 호랑이 그림을 배치해 수 공간과 함께 명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했어요.
독특한 외관을 가진 가정의학과 향심재는 어떻게 탄생했나요
서울에서 고향인 대구로 다시 돌아온 의사 분의 의뢰였어요. 조각과 그림을 좋아하고, 요리에서 기쁨을 느끼는 클라이언트가 유럽의 선진화된 의료 시스템을 대구에서 구현해 보고 싶어했죠. 80년대에 지어진 건물을 부수고 새롭게 짓고 싶어했는데, 건물 면면을 살펴보고 저희가 리모델링을 제안했어요. 구조상으로 문제가 없는 건물이라면, 클라이언트의 좋은 공간을 만드는 게 더 중요하니까요. 그렇게 완성된 향심재는 약 처방 대신 밥을 먹을 수 있는 병원이 됐어요. 제가 “선생님 그런데 병은 왜 생기는 걸까요?” 여쭤봤더니 병은 무조건 먹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하더라고요. 잘만 먹어도 걸리지 않는 병이 너무나 많대요. 이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향심재는 환자가 오면 밥을 해주는 공간으로 거듭나게 됐어요. 클라이언트가 어떤 삶을 살고 싶어서 이런 공간을 만드는지, 이야기를 듣다 보면 생각지도 못했던 새로운 목적을 가진 공간이 만들어지기도 하는 것 같아요. 건물 외장재로 볏집을 사용했는데 밥에서부터 연상해 곳간에 대한 이미지, 쌀과 벼로 뻗어가 유일무이한 특징이 됐어요.
프로젝트를 마친 뒤 그 공간이 클라이언트와 얼마만큼 닮았는지를 봐요. 그들의 이야기를 담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렇게 해야 그 공간이 오래 쓰이기 때문이에요. 자신이 좋아하는 이야기와 앞으로 살아가고 싶어하는 방향을 따라 설계하면 그 즐거운 마음이 공간을 유지하고 관리하는 일과 닿아있다고 믿어요. 저희가 만든 협소주택도 원래 애널리스트로 일하다가 글을 쓰는 꿈을 가진 소설가의 집이었거든요. 건축주와 장문의 글을 주고받으면서 설계를 완성했고, 이미지 중심의 미팅을 하지 않았죠. 그에게 익숙한 화법으로 집에 대한 바람들을 좁혀 갔어요. 조금 낡아도, 예산이 부족해도 내 이야기가 들어간 공간은 애착이 생길 수밖에 없어요. 그게 진정한 지속 가능한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향심재 건물 내부는 곳간을 떠올리며 싸래기를 배치했다.
우리와 함께 공간과 건축을 만들었던 클라이언트와 상생하는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어요. 밀밀아, 향심재, 라메르판지 등 공간의 특징과 걸맞은 제품을 만들어 소개하는 브랜드를 가을쯤 론칭할 예정이에요. 브랜드에서는 계속해서 새로운 콘텐츠가 필요하잖아요. 백에이어소시에이츠라는 연결고리를 가지고 함께 시너지를 낼 수 있기를 바라고 있어요.
주변 환경과 잘 어우러질 수 있도록 붉은색 벽돌로 지었다. 협소주택의 지붕에는 창이 있어 천장에서도 빛이 들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