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도시공학을 전공하고, 현재 도쿄대에서 도시계획사 박사 과정에 있다. 도시계획이 이 땅에 남긴 흔적을 기록하는 ‘서울의 현대를 찾아서’ 프로젝트의 처음을 기억하는지
어릴 때부터 도시 모습을 사진으로 찍는 게 좋았다. 초등학교 5학년 무렵, 부모님이 처음 구입한 디지털카메라로 우연히 철거 직전, 청계천 삼일아파트 모습을 담기도 했다. 본격적으로 도시 사진을 찍고 글로 기록을 남긴 건 2010년, 트위터를 시작하면서부터. 하루에 한 장씩,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어 올렸다. 돌이켜보니 서울만 5만 장 이상의 사진을 찍었다. 기록으로서 ‘서울의 현대를 찾아서’를 하게 된 건 2015년 하반기부터다. 한강로변에 있는, 족히 반 세기는 넘었을 법한 2층 벽돌 건물을 보고 ‘나만 보기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느 때처럼 트위터에 올려야지 싶었는데, 문득 해시태그 기능이 떠올랐다. 매번 일정한 해시태그를 달면 체계적으로 기록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해시태그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서울의현대를찾아서’다.
1966년에 준공한 삼옥빌딩. 중구 북창동에 있는 이 빌딩은 외벽과 창틀, 파사드 등에서 독일 바우하우스를 떠올리게 할 만큼 모더니즘 건축의 정수를 보여준다.
가장 마지막으로 서울을 기록한 건 올림픽대로에서 바라본 용산구 이촌동의 아파트 스카이라인이다. 본가로 이동하는 올림픽대로에서 차창 밖 풍경을 자주 찍는다. 그곳을 지날 때마다 ‘아파트 박물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에서 나고 자랐다. 유년시절의 동네 풍경과 건축물에 대한 기억이 있다면
태어날 때부터 주공 아파트에 살았다. 그 아파트가 재건축됐다. 옛날에 반포주공 아파트로 불리던, 지금의 반포 자이 아파트가 그곳이다. 재건축의 전 과정, 즉 이주와 철거, 터파기, 신축 과정 등 하나의 마을이 완전히 사라졌다 재탄생하는 걸 경험했다. 이런 경험에 비춰 내 생활 공간을 하나의 이미지로 정리한다면 5층 규모의 야트막한 아파트 수십 채가 죽 늘어선 풍경이다.
2014년, 지금은 철거된 아현고가도로에서 열린 걷기대회의 한 장면을 포착했다.
서울의 현대를 찾아 다니며, 전율이 일 정도로 좋았던 곳이 있었다면
중구 북창동에 있는 삼옥빌딩을 발견했을 때. 1966년에 준공한 모더니즘 건축의 정수인 독일 바우하우스를 떠올리게 하는 빌딩이다. 새하얀 외벽과 단정한 창틀, 파사드와 측면을 살짝 감싼 전면창, 측면의 9분할 창틀 그리고 각층을 구분하는 검정색 줄무늬까지. 상상으로 그려온 ‘최애’ 현대건축이 바로 이런 모습이었다.
1960년대 청계천변 일대에 무허가 판잣집을 짓고 사는 사람들에게 서울시가 주거 문제 해결을 위해 지은 삼일아파트.
도시를 기록하면서, 서울에 대해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편견이나 선입견과 마주할 때도 있을 것 같다
서울의 어떤 공간을 얘기할 때, 공간이 겪은 수십, 수백 년의 시간 중 특정한 시기로 그 공간을 해석하고 다루려는 시도가 많은 것 같다. 예를 들어 한양도성 내부의 모든 도시 조직은 조선왕조, 대한제국,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등을 겪어왔음에도 재개발 혹은 재건축 과정에서 특정 시대만 강조되는 것 같아 늘 아쉽다.
정보 수집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거나 꼭 챙기는 것은 1차로 토지대장이나 건축물대장 등 해당 공간의 행정 서류를 인터넷에서 열람하고, 추가로 국립중앙도서관이나 네이버뉴스라이브러리에서 제공하는 옛 신문 아카이브를 통해 당시 시대상을 파악한다. 건축 관련 정보를 수집할 때, 건축물대장에 표기된 사용승인일과 구조, 층수, 연면적 등 사람으로 치면 키와 몸무게, 나이에 해당하는 정보는 반드시 파악하려고 노력한다. 때론 이런 기본적인 ‘신상’조차 미궁인 경우가 있어서 정보를 수집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탐사’가 된다.
차로 올림픽대로를 지나면서 포착한 용산구 이촌동의 아파트 스카이라인. 한국의 전형적인 아파트 외관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그렇게 수집한 기록을 한 데 모은 〈도시, 서울: 서울의 현대를 찾아서〉를 최근 출판했다. 서울의 다리, 경관, 근대건축, 사라진 건축물, 빌딩, 아파트 등으로 나눠 서울의 면면을 소개한다. 이런 카테고리는 작가의 관심사에 의한 분류인가? 소개한 곳들이 왜 서울 현대의 면모를 드러낸다고 보는지, 그 기준이 궁금하다
책을 출판하기 앞서 독립출판 형태로 서울의 오래된 빌딩들과 아현 고가차도의 마지막 순간을 담은 책을 냈었다. 〈도시, 서울〉 출판 이야기가 나온 건 2020년부터다. 당시 코로나로 해외에 발이 묶여 있었던 터라 사진 촬영과 자료 보강이 늦어져 올해 빛을 본 것이다. 카테고리를 나누기 앞서 인스타그램에 올린 200여 개의 포스팅 중에서 책에 소개할 수 있는 분량으로 기록한 장소 100여 곳을 추렸다. 선별 기준은 다른 사람들에게 ‘서울에 이런 곳이 있습니다!’라고 꼭 알려주고 싶은 의지 혹은 소망이 우선했다. 그 후 카테고리를 나누는 작업을 진행했다. 평소 관심을 가지고 있던 공간을 유형별로 나누고 보니, 무의식중에 반영된 내 관심사가 뚜렷하게 드러나는 것 같아 흥미로웠다.
한편, 재미 건축가 김종성의 설계로 지어진 반듯한 외관의 밀레니엄 힐튼 호텔은 알루미늄 외벽과 높은 층고의 아트리움이라는 독특한 건축적 특징을 지닌 곳이다. 호텔은 철거가 확정돼 2022년 12월 31일을 끝으로 문을 닫았다. 현 서울스퀘어인 ‘대우센터 빌딩’과 함께 서울역 앞 재개발을 대표하는 곳이다.
도시가 변하면서 사라졌거나 사라질지 모를 장소나 구성물도 소개하고 있다. 가령 삼풍백화점 쓰레기통이나 옥인시범아파트 7동의 흔적 등에 대한 얘기는 작가의 아쉬운 마음이 짙게 묻어 있다. 그런 점에서 서울에서 이것만은 오래 지켜봤으면 하는 것이 있는지
30~70년대에 지어진 빌딩과 그 틈바구니에 형성된 가로망이 최대한 보존됐으면 좋겠다. 당시 서울이 급격히 성장하면서 이름 없는 무명 빌딩이 많이 생겼다. 이 빌딩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일했고, 그것이 도시 성장의 원천이 됐으며, 때론 역사적인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문화재로 지정된 화려한 공간도 있지만, 이런 무명의 빌딩들이 있었기에 서울의 과거와 현재, 미래까지 성립할 수 있었는데 용적률과 건폐율 확보라는 미명 아래 소리소문 없이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가로망도 마찬가지다. 자동차 한 대 지나가기 힘들거나 방재 기능상 문제가 된다면 부득이 재정비하는 게 맞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현대의 기억들’이 너무 많이 사라진다. 자동차의 교행이 가능한 수준의 폭원(5~6m)이 확보된 이면도로 가로망의 경우, 도심을 도심답게 만들어주는 주인공이라고 생각한다. 최초의 토지구획정리 사업이 서울에서 시행된 이래 30~70년대까지 형성된 네모반듯하면서도 아기자기한 구획에는 동네 고유의 ‘거리 문화’가 켜켜이 깃들어 있다. 그런데 재개발 과정에서 이런 구획들이 통합돼 거대한 빌딩으로 대체된다. 오랫동안 쌓아온 거리의 기억이 순식간에 상실되는 게 안타깝다.
70~80년대에 지어진 건물은 정육면체 일색의 건물과 달리 모서리를 깎아 만든 독특한 외관이 눈에 띈다.
서울의 현대에 이어 지금 인스타그램을 통해 ‘도쿄의 현대를 찾아서’를 기록 중이다. 서울이라는 도시와 비교했을 때, 도쿄는 어떤 도시인가
요즘 도쿄도 재개발 바람이 불고 있지만, 서울에 비하면 과거를 존중하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최근 노들섬의 재구조화 이슈만 해도 그렇다. 2010년 중반에 지은 현재의 노들섬 시설을 모두 철거하고 새로운 문화공간을 짓겠다는 서울시의 계획에 놀랐다. 지은 지 10년도 채 안 된 영구적인 공공 시설을, 시정 기조가 바뀌었다고 없애는 일은 도쿄에서는 불가능하다. 이런 비이성적인 행위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건 나 같은 도시 기록자이자 연구자에게 매우 중요하다.
건물의 나이만큼 오랜 세월을 함께해 온 상점들의 낡은 간판 또한 서울의 현대를 보여주는 요소들.
외국인에게 서울이라는 도시를 한 마디로 설명해야 한다면
뉴욕, 도쿄, 런던, 파리 등 세계적 대도시들이 200년 넘게 쌓아온 변화를 서울은 단 80년 동안에 겪었다. 인구 30만의 성곽도시, 인구 100만의 식민지 수도, 전쟁, 폭발적인 인구 성장, 메가 이벤트, 인구 감소와 성숙기 돌입이 채 100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매우 격렬하게 일어났다. 이것이 좋든 싫든 지금 서울의 정체성이라고 생각한다.
공간들이 사라지기 전에 어떻게 하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그 사실을 알릴 수 있을지를 고민한다. 앞서 말한 노들섬 문화공간이나 이미 철거가 확정된 밀레니엄 힐튼과 라마다 서울부터 보존 결정이 번복된 원주 아카데미 극장까지, 안타까운 일이 서울뿐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동시다발로 일어나고 있다. 일단 공간 철거와 훼손 결정이 내려지면, 더 이상 손쓸 도리가 없는 경우가 많다. 이미 보존이 결정됐음에도 정치적 의도에 의해 번복되는 경우를 제외한다면, 애초 해당 공간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 부족이 철거로 이어진다. 그런 점에서 오래된 도시공간에 관심을 갖지 않던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면 주의를 환기시킬 수 있을지, 그 과정에서 내 기록이 어떤 의의와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