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취소관’이라는 이름을 알게 된 것은 지난 2020년 온양민속박물관 공예주간 기획전 〈일상의 향유〉에서다. 일생에 걸쳐 행하는 선조들의 의례를 오늘날의 일상과 어우러지도록 재구성한 이 전시에서 고취소관은 구정아트센터의 전시관 한가운데에 거대한 잔칫상을 차렸다. 상에는 전통 혼례 혹은 회갑 축하상 위에 둥글게 쌓는 옥춘당과 과일 따위의 모형이 줄지어 올랐고, 모두 눈이 시릴 만큼 선명한 마젠타 핑크 컬러로 채색돼 있었다. 그토록 명랑하게 전통 양식을 전복시킨 잔칫상이라니. 고취소관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고리원은 흰색과 빨간색으로 이루어진 사물에 특별한 애착이 있다. 탈과 닭 오브제는 고취소관의 이름으로 기획하는 모든 장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물들.
“미술사를 전공하긴 했지만 진지한 미술 사학도는 아니었어요(웃음). 나를 어떤 일을 하는 사람으로 불러야 하나 고민하다 요즘은 ‘이벤트 스타일링 디렉터’라는 이름을 붙이고 있죠.” 고취소관은 아이의 돌상 차림을 비롯해 일생에 한 번뿐인 잔칫날을 스타일링한다. 또 고리원 대표가 경험과 연습을 거듭하며 이루고 싶은 아름다움을 구상하다 어떤 결실을 맺으면 전시를 열기도 한다. “책가도라는 형식을 빌려 제가 컬렉팅한 기물을 기반으로 구현할 수 있는 것을 찾은 결과가 ‘잔치’였어요. 저에게 ‘잔치’는 주제입니다. 올해 말에도 전시를 기획하고 있는데, 만들고 싶은 장면이 분명해서 많은 부분을 직접 제작할 예정이에요.”

고취소관의 ‘연구개발자’라 자칭하는 고리원의 작업실.
고리원의 집에는 ‘작업실’이라 부르는, 작은 다락방 크기의 아카이브가 있다. 보물창고를 방불케 하는 이곳의 물건들은 언뜻 보면 한국의 민예품 혹은 전통 공예품처럼 보이지만 실은 전 세계에서 모은 오브제다. 이탈리아, 프랑스, 일본, 중국, 한국 각국의 작가와 장인이 만든 탈에서부터 유리 수공예품, 종이 꽃, 도자기, 옻종이, 장식용 철물, 화병 등 볼수록 국적과 시대를 알기 힘들고 다양한 문화적 혹은 시대적 레이어가 읽히는 물건들이다.

“일제강점기를 지나며 우리 문화의 화려한 일면은 억눌리고 ‘백의민족’이라는 프레임이 씌워졌어요. 그 시절 백의민족의 사물은 단순한 아름다움을 자랑했지만, 그 속에는 굉장한 에너지가 응축돼 있었죠. 그저 ‘덜어냄’으로 이룬 미(美)가 아닙니다. 전 수집하고 전시하고 시각적으로 구현할 때, 이와 같이 다양한 층위의 미묘함과 복합성을 숨겨두는 편이에요. 그러니 한국에서 구할 수 있는 사물로는 부족한 거죠.” 고리원이 기물을 수집하면서 설정한 기준은 느슨하면서도 확고하다. 역사와 전통을 바탕으로 하지만 구체적 상상이 가미된다.

국적과 시대를 넘나드는 사물들에는 고상한 운치가 배어 있다.
“개화기 시대의 명망 높고 취향 있는 집에서 누렸을 법한, 그들을 위해 만들어질 법한 느낌이랄까요. 유서 깊은 가문의 사람들이 개화를 맞아 어느 정도까지 수입품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누리며 살까? 그런 호기심으로 상상합니다. 자료 조사를 하고 개화기에 접목해 보죠. 그렇게 점점 제가 원하는 ‘그림’을 구체화해 왔어요. 이해하기 쉽게 말해야 할 땐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을 언급할 때도 있지만, 저에게는 아주 명확한 기준이고, 원하는 아름다움을 구현하고 싶은 마음으로 수집한 물건들이 여기 있는 거예요. 한국 공예품의 경우 박물관에 전시된 것과는 분명 퀄리티의 차이가 있어요. 그래도 제 눈에는 이 정도만 해도 우리 미감을 왜곡하지 않고 잘 입힌 것 같아요.”





그의 수집 활동은 우연을 기다려야 하는 과정이다. ‘개화기’ 물건을 수집하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고리원은 자신을 다양한 환경에 자주 노출시킨다. “일단 집 밖으로 나섭니다. 전시도 계속 보러 다니고, 여건이 될 때는 여행도 떠나죠. 우연히 무언가 만나기를 기다리는 방법이에요. 그렇게 나가서 걷다 보면 뭔가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장소를 발견할 때가 있어요. 제가 촉이 좋거든요. 들어가보면 정말 귀한 게 있어요.”




색동 비단으로 감싼 함과 베개.
고리원은 말버릇처럼 “좋은 건 비싸고, 무겁다”고 말한다. “결국 이런 말이에요. 진짜 재료를 사용하고, 이를 섬세하게 다루는 사람들이 만든 물건이 좋다. 진짜 장인들이 제대로 만들어 너무 낡지 않고, 보존 상태가 좋은 아름다움을 모으고 싶어요. 그래야 저만의 스타일로 체화할 수 있으니까요. 수집하는 사람으로서 나를 돌이켜보면 그래요. 병풍과 도자기, 소반 몇 점 있는 환경에서 자랐고, 내가 잘하는 일을 꾸준히 해왔어요. 마치 수행자처럼 계속해서 수집해 온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