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CM와 부동의 첫사랑 || 엘르코리아 (ELLE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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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CM와 부동의 첫사랑

누군가의 이야기를 오래 귀담아 듣는 것, 그들의 시선에 맞춰 노래를 짓는 10CM의 노력, 그렇게 시작된 '부동의 첫사랑'.

이재희 BY 이재희 2023.06.06
 
올초 발표한 〈Remake 1.0〉은 곡 선정부터 편곡까지 2년간 준비해 온 오리지널 리메이크 프로젝트죠. 현재 인디 신에서 활동하는 아티스트들의 곡을 리메이크했는데, 제목 옆에 이들의 인스타그램 아이디가 표기된 게 신선했어요. 그들이 더 알려지길 바라는 마음인가요
 
맞아요. 이강승, 웨스턴 카잇, 결, 케니더킹이 제 제안을 기꺼이 받아줘서 고마웠어요. 혹시라도 그분들이 더 알려질까 하는 마음에 제목에 그들의 SNS 계정을 기재했어요. 다만 아티스트들과 저 사이에 데뷔 연도 차이가 있어서 제가 도와주는 것처럼 보일까 봐 부담스러웠어요.
 
깅엄 체크 패턴의 톱은 People of the World. 안경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깅엄 체크 패턴의 톱은 People of the World. 안경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이들의 곡을 편곡할 때 지향 혹은 지양했던 부분은
 
지양했던 건 방금 말한 그 점이에요. 도와준다는 의도에 무게를 치중하는 느낌이 들 것 같은 우려. 제가 크게 도움받은 앨범이거든요. 이미 유명한 곡들이고, 편곡을 허락해 줘서 작업할 수 있었어요. 지향했던 점은 제가 주도해서 리메이크 앨범을 만드는 것이었죠. 이전부터 만들고 싶었는데, 프로젝트 형식으로 참여한 것 외에 온전히 제 것을 만든 적 없거든요. 이미 대중적인 히트곡을 편곡한 앨범은 많으니 다른 형식으로 접근하기로 했어요. 제 음악의 출발이 인디 신이고, 지금 인디 신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친구들의 곡으로 하는 게 좋겠다 싶었죠. 잘 살렸나 모르겠어요. 솔직히 만들고 나서 다시 들으니 원곡이 더 좋더라고요(웃음). 
 
이들과의 조우를 통해 요즘 인디 신의 새로운 트렌드를 발견했다면
 
제가 거시적 흐름을 잘 모르지만, 다른 점은 가사라고 생각해요. 확실히 가사가 더 솔직하죠. 제 가사는 솔직하거나 표면적으로 느껴지진 않아요. 반면 현재 인디 신 곡의 가사는 좀 더 저돌적인 부분이 있고, 좋으면 좋다고 솔직하게 표현하는 뉘앙스가 있어요. 
 
‘딱 10CM만’과 ‘정이라고 하자’를 함께 작업한 스무 살 후배 빅나티가 딩고 〈이슬라이브2〉에서 건배를 청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후 이어진 대화는 친구 같았어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웃음). 나이 차가 딱 두 배죠. 저는 생각보다 철이 없고, 그 친구는 생각보다 원숙해요. 그래서 친해진 것 같아요. 어떨 땐 음악활동을 오래 한 사람처럼 느껴질 때도 있어요. 시대 흐름을 저보다 훨씬 빨리 알아차리니 배울 만하죠. 
 
재킷은 Moschino. 티셔츠는 Saint Laurent by Anthony Vaccarello. 데님 팬츠는 Balenciaga. 스니커즈는 Adidas. 안경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재킷은 Moschino. 티셔츠는 Saint Laurent by Anthony Vaccarello. 데님 팬츠는 Balenciaga. 스니커즈는 Adidas. 안경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2003년생인 빅나티와 곡 작업을 하며 사랑에 대한 대화도 많이 나눴을 것 같아요. 지금 스무 살이 사랑을 대하는 방식과 20년 전의 스무 살이 사랑을 대하는 방식에 차이가 있나요 
 
그런데 서동현(빅나티)은 이 질문에 해답할 수 있는 친구가 아닌 것 같습니다(웃음). 요즘 젊은 세대가 가진 선입견이 있는데, 이를테면 가볍게 만나고 헤어진다든지, 더 쿨하다든지. 반면 동현이는 그렇지 않거든요. 더 찌질하고 지고지순한 것 같아요. 어릴 적 짝사랑을 계속 곡으로 쓰는 것만 봐도 그렇죠. ‘쿨’하진 않아요.

더 이상 자신의 이야기를 쓰기 싫어 주변인의 에피소드나 말에 영감받아 가사를 쓴다고 했어요
 
어느 순간 떠올려보니 내 일화를 노래로 만든 경우가 없더라고요. 영감이 되는 일이나 강렬히 느꼈던 감정을 떠올려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거든요. 그래서 소스를 다른 사람에게서 찾아야겠다고 말했나 봐요. 시트콤 보다가 갑자기 생각나서 만든 곡도 있어요. 내 이야기를 하면 하죠. 하지만 재미가 없어요. 별로 재미있게 살지 않았거든요(웃음). 
 
더블 브레스티드 수트는 People of the World. 셔츠는 Maxi J. 스니커즈는 Adidas. 안경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더블 브레스티드 수트는 People of the World. 셔츠는 Maxi J. 스니커즈는 Adidas. 안경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5월 14일에 발매된 신곡 ‘부동의 첫사랑’은 이미 무대에서 여러 번 공개했어요
 
저도 알아요. 꼭꼭 숨겨놨다가 갑자기 ‘짠!’ 하고 열어야 멋있다는 걸. 하지만 못 참겠어요. 노래를 완성하면 빨리 보여드리고 싶어서. 
 
‘부동의 첫사랑’은 짝사랑을 그린 곡이에요. 이 곡의 화자는 ‘친구3’이고요. 친구3은 어떤 인물인가요 
 
‘첫사랑을 주제로 노래를 만들고 싶다’가 시작이에요. 생각해 보니 첫사랑을 그린 노래가 없었죠. 역시 10CM의 주인공은 성격이 정해져 있잖아요. 인사이더보다 주변에서 겉도는 사람, 자기한테 과분한 사람을 좋아하는 성격. 보통은 고백도 못 하고 끝나지만 ‘부동의 첫사랑’에선 고백했어요. 행복한 결말은 아니었으나 ‘역시나 변치 않는 첫사랑’이라고 확신하는 마음가짐이 좋았어요. 
 
코트는 Songzio. 데님 팬츠는 RSC. 슬라이드는 Adidas. 안경은 Miu Miu.

코트는 Songzio. 데님 팬츠는 RSC. 슬라이드는 Adidas. 안경은 Miu Miu.

 
짝사랑이 해피 엔딩으로 이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용기가 필요한 사람이 활용하면 좋을 10CM의 가사를 추천한다면 
 
여러 곡을 만들어 발표한 사람 입장에서 ‘오늘밤은 어둠이 무서워요’를 추천해 봅니다. 가사가 꽤 능청스러워요. 서로 호감 있는 상태에서 활용하는 게 매력적이긴 합니다. 별생각 없는 상대에게 하면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올 수도 있어요. 
 
‘라면 먹고 갈래?’나 ‘고양이 보러 갈래?’의 일환이군요 
 
그 ‘라면 먹고 갈래?’가 너무 싫어서 달리 표현하려고 ‘오늘밤은 어둠이 무서워요’를 썼어요. 고양이 알레르기 있는 사람은 어떡해요?
 
스트라이프 수트는 People of the World. 스니커즈는 Adidas. 안경은 Gentle Monster.

스트라이프 수트는 People of the World. 스니커즈는 Adidas. 안경은 Gentle Monster.

 
찌질한 사랑 이야기가 지겨운 적은
 
없어요. 에너지를 가장 많이 뿜어낼 수 있는 소재인 것 같아요. 사랑 이야기가 아닌 노래도 많아요. 하지만 10CM를 시작할 때 아예 정해버렸어요. 젊은 음악, 대학생들이 많이 듣는 음악을 만들고 싶다고요. 그 점을 염두에 두고 곡을 쓰니까 ‘사랑’밖에 할 이야기가 없었죠. 
 
10CM로서 14년 차입니다. 밴드해령 활동까지 포함하면 더 오래됐죠. 무대에 서면 여전히 떨리나요
 
생각보다 많이 긴장해요. 이제 5월이니까, 대학교 축제 공연이 줄줄이 열리겠죠. 대학교 축제 공연은 많이 떨려요. 봄 축제 공연을 연이어 하다 보면 긴장이 서서히 풀리다가도, 잠깐 쉬었다 가을 대학교 축제 공연이 시작되면 또 떨려요. 10CM 콘서트 무대에선 너무 긴장하죠. 준비한 건 많고, 다 보여줘야 하는데 실수할까 봐. 예전에 단독 콘서트에서 공연 연출 팀이 밤새 만든 꽃가루를 제 실수로 잘못된 타이밍에 날려 무척 당황했던 적 있어요. 
 
오랜 시간 간직하고 있는 습관은 
 
성실함. 일할 땐 ‘할 거면 정신없이 제대로 해야지’라는 생각으로 임합니다. ‘워라밸’ 같은 건 없죠. 또 하나는 노래를 들려주고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때, 무척 행복하다는 감정은 여전히 변함없습니다. 
 
곧 〈엘르〉 스테이지 무대에서 만날 예정입니다. 한편 버스킹 문화에 대한 애정도 꾸준하게 보이고 있어요. 버스킹의 매력은 
 
여러 가지입니다. 인지도 있는 가수의 길거리 공연은 큰 의미 없어요. 아무도 나를 모른다는 게 버스킹의 매력입니다. 아주 불안하고 긴장되고 무서운 무대거든요. 수많은 사람이 지나가지만 기타 들고 자리 잡을 때까지 아무도 관심을 안 줘요. 우연히 눈길이 닿아 멈춰 선 관객 한두 명을 제외하면요. 그러다 사람이 조금씩 모이고 들어주며 박수 쳐주는 게 굉장한 감동이자 짜릿한 경험이죠. 
 
트레이닝 수트와 셔츠는 ac모두 Kenzo. 안경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트레이닝 수트와 셔츠는 ac모두 Kenzo. 안경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마로니에 공원과 홍대 거리에서 4시간 버스킹하던 시절의 권정열을 돌아본다면 
 
너무 행복했죠. 엄청 고생했지만 항상 설레고 즐거웠어요. 음악을 하고 싶은데 연습실이 없어 돈을 벌어야 했어요. 그래서 버스킹을 시작했죠. 통기타 하나 들고 거리로 나갔어요. 그땐 지금보다 목소리가 더 컸어요. 처음 2시간 동안 몇십만 원을 벌었는데, 엄청난 시급이잖아요. 곧바로 아르바이트하던 가게에 전화해 그만두겠다고 했어요. 근데 그 몇십만 원은 초심자의 행운이었어요. 그렇지만 아르바이트하며 고되게 음악을 하는 것보단 괜찮았어요. 기가 막히게 돈이 안 벌리는 날도 많았지만요.
 
그 시절이 그리울 때도 있겠죠
 
항상 그리워요. 음악에 있어선 항상 자유로웠고, 즐거움만 추구해도 모든 게 허락되는 시절이니까. 지금을 좋아하지 않거나 재미없다는 게 아니고요. 지금은 잘해야 하니까 마냥 즐길 수만은 없죠.  
 
요즘 버스킹하는 친구들 보면 어때요
 
너무 재미있죠. 볼륨 전쟁을 하더라고요. 너무 ‘라떼’ 같지만, 우리 때는 앰프 같은 장비를 안 썼어요. 통기타와 목청이 전부였죠. 요즘은 버스킹 거리에서 많은 친구들이 동시에 공연해서 서로 더 큰 소리를 내기 위해 앰프를 사용하더군요. 경쟁이 너무 치열해서 공연 자리가 시스템화됐다고도 하더군요. 구청에 예약해야 공연을 할 수 있대요. 낭만이 없어졌죠. 한편으론 질서정연해진 것으로 볼 수도 있고요.
 
음악을 하고 무대에 서면서 가장 행복한 때를 꼽는다면
 
연말 콘서트 때. 한 해 활동을 열심히 한 보상 같아요. 그리고 지난해에 모교에서 축제 무대를 처음 선보였는데 많이 뿌듯했어요.
 
음악이 지겹다고 느낀 적은
 
제가 생각보다 뭘 하든 별생각 없어요. 음악이 삶 자체가 돼버려서 그만두고 싶은 생각도 안 해봤고, 매번 설렘을 느끼지도 않죠. 당연히 해야 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재킷과 데님은 모두 People of the World. 스니커즈는 Adidas. 안경은 Gentle Monster.

재킷과 데님은 모두 People of the World. 스니커즈는 Adidas. 안경은 Gentle Monster.

 
그럼에도 좋은 음악 혹은 음악이 가진 힘과 영향력을 의심하지 않고 믿는 부분이 있다면
 
음악을 아주 무겁고 고차원적으로 생각해 본 적 없어요. 어쩌면 아주 가벼운 것이죠. 단 3~4분 안에 끝나니까.
 
연말에 올림픽체조경기장에서 공연이 예정돼 있어요. 큰 무대에 서면 어떤 기분인가요
 
시작부터 울컥해요. 객석이 꽉 찬 광경을 보면 기분이 이상하죠. 공연 직전까지 티켓 판매 사이트를 들락거려요. 매진이 떠 있어도 불안해서 창을 못 꺼요. 혹시 시스템 때문에 갑자기 취소표가 와르르 쏟아질 수도 있으니. 그러다 공연 당일 꽉 찬 광경을 봐야 안도해요.
 
잘 알려진 평양냉면 마니아로서, 초여름을 맞아 평양냉면 맛집 톱 3를 매긴다면
 
1위는 을밀대. 여기 냉면은 중독성이 심합니다. 너무 가고 싶어서 정신 못 차리는 수준으로 좋아하는 곳이죠. 2위는 을지면옥을 꼽고 싶은데 문을 닫아버려서. 약간 다른 포인트로 3위를 매긴다면 수원의 평장원을 꼽겠습니다. 24시간 영업하는 곳이죠. 보통 24시간 영업이라면 맛의 질이 떨어진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곳은 그렇지 않습니다. 정말 말이 안 되죠. 갈 때마다 기도해요. 영업시간 바뀌지 말라고. 장사가 잘되는 곳이 아닌 것 같아 불안합니다. 영업시간이 줄어들까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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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사진 김희준
    패션 에디터 이재희
    피쳐 에디터 정소진
    스타일리스트 두호
    헤어 스타일리스트 구예영
    메이크업 아티스트 연정
    아트 디자이너 정혜림
    디지털 디자인 장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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