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 목요일 오후 9시엔 파란 유니폼의 근육 천사를 찾아간다. 그는 내 개인 트레이너다. 천사라고 쓰자마자 양심이 쓰린 걸 보니 내 본심은 반대의 단어를 떠올리는 것 같다. 어쨌든 오늘 나는 조금 주눅 들어 있다. 연말연시 온갖 산해진미를 찾아 먹었다가 엄중한 주의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누군가의 눈치를 보는 건 그다지 싫어하지 않는다. 그런 행동은 무척 사회적이어서 내게 사회성이 작용하고 있음을 확인받을 수 있기도 하다. 그리고 난 진짜 바빴다. 바쁜 거랑 먹는 거랑 무슨 상관이냐고 하면 할 말 없지만…. 현대인이라면 건강한 식사를 챙기는 데 얼마나 품이 드는지 알 것이다. 나는 묘하게 싸늘한 것 같은 선생님을 곁눈질하며 생각한다.
‘이 사람은 프로다. 프로로서 과연 나 같은 애들을 한두 번 봤겠나? 나 같은 혹은 나보다 심한 사람들을 한 트럭은 봤겠지. 그러니 내가 저지르는 헛짓거리는 절대 이 사람에게 선명한 인상을 주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저 도도한 표정은 뭐냐고? 글쎄, 원래 성격이 새침한가 봐.’ 구질구질해 보이겠지만 나는 이런 생각에서 진실로 위안을 얻는다. 내가 1등이나 꼴등이 아니라 중간 어디쯤을 부유하는 몰개성한 사람일 때 투명한 편안함을 느낀다. 그러나 애써 찾은 안도감은 운동 시작 후 5분도 되지 않아 박살 나고 만다. 운동은 아주 간단한데도 태어난 게 후회될 만큼 힘들다.
선생님은 늘 정성 들여 기구 이름을 알려주지만, 그런 것이 머리에 남는 경우는 거의 없다. 다리 운동기구니까 ‘레그 헬’ ‘레그 지저스 크라이스트’ ‘레그 엑소시즘’ 등 뭐 이런 이름들이 붙은 게 아닐까 추측해 볼 뿐이다. 운동하다 보면 어느 순간엔 반드시 내가 선생님의 싸늘함을 넘어서고 마는데, 그건 음성으로는 아무 대답을 할 수 없고 오로지 ‘끄덕끄덕’과 ‘도리도리’로 의사표현을 하는 것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고갯짓으로 의사표현을 자주 했다. ‘싸가지 없다’는 지적을 여러 번 들은 후로 의식적으로 고치려는 노력도 많이 했다. 이 노력은 30대에 접어들어 거의 완성으로 접어드는 참이었다. 실제로 싸가지를 고치는 건 어렵지만…. 싸가지를 들킬 만한 행동을 고치는 건 그나마 쉬웠다. 고갯짓을 하는 이유는 구토감이 느껴져서다. 입을 열었다가 토하기라도 한다면 나는 영원히 헬스장이란 공간을 수치로 기억하게 될 것이다. 헬스장에서 제일 싫은 공간은 의외로 스트레칭 존이었다. 얼핏 보면 기구 운동보다 맨몸 운동이 수월할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게다가 그곳에서 내 얼굴을 바라보며 운동하는 건 정말 싫다. 검정 대걸레마냥 갈래갈래 나부끼는 머리털과 팥죽 같은 안색의 나와 눈을 맞추고 스쿼트를 하고 있자면 없던 외모 자격지심까지 생겨나는 기분이다. 내가 왜 보고 싶지 않은 내 얼굴을 봐야 하냐고 묻자 “정면을 봐야 축이 틀어지지 않으니까요”라는 당연한 대답이 따라왔다. 선생님은 외모 자격지심을 박멸하는 법을 몸소 가르쳐주기도 했다. 방금 한 동작을 두 세트만 더해 보면 애초에 자기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잊게 될 거라고 했다. 실제로 숨 넘어가기 직전이 되면 얼굴은 어느덧 날아가고, 그동안 내가 휩쓸었던 배달 음식들이 원죄 목록처럼 좌르르 스쳐 지나갔다. 죽을 것 같다는 심정을 느끼기 때문에 일종의 주마등이라 부를 수도 있겠다.
한번은 선생님의 동정심을 사기 위해 내가 본 장면을 읊조려주기도 했다. “방금… 제가 요 근래 먹었던 모든 음식이 좌르르 눈앞을 스쳐 갔어요. 아무래도 임종이 다가온 모양이에요….” “그게 회원님께는 왜 그렇게 자주 오나요? 일단 일어나세요.” “내가 왜 그렇게 먹어서 이 고통을 겪고 있나 하는 생각만….” “에이, 그래도 먹을 땐 진심으로 행복했잖아요. 행복했으면 이 정도 고생해도 괜찮죠. 안 그래요?” 이상하게도 묘하게 철학적인 이 대화는 오랫동안 마음에 남았다. 나는 무심결에 행복이 선한 마음이나 행동의 대가로 주어지는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따지고 보면 맛있는 걸 먹을 때마다 알 수 없는 죄책감에 휩싸였던 이유도 그것이었다. 아무것도 안 하고 게으르게 살아서 행복할 자격이 없음에도 당위를 앞질러 행복을 구매해 즐긴 것이었다.
이상하게도 더 좋아지기 위해 운동한다고 생각할 땐 불만스러웠는데, 미리 대출한 행복을 갚는다고 생각하니 불만이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나는 혼란스러웠다. 매일 카드값에 시달리다 가까스로 갚는 것을 낙으로 삼다 보니 채무자의 태도가 몸에 배어버린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생각조차 곧 날아갔다. 대체 어떻게 누워서 두 다리를 들었다 내렸다 하는 단순한 동작이 배속이 파열되는 느낌을 줄 수 있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막판에는 다리를 드는데 저절로 머리통이 딸려 올라왔다. “어어, 머리가 왜 올라오죠?” “든 게 없어서! 든 게 없으니 가벼워서 그래요!” 나는 이판사판이었다. 드디어 운동이 끝나고 꿀 같은 휴식 시간, 새까맣게 도색된 헬스장 천장이 내게 또 사후세계에 대한 영감을 주었다. ‘지옥 같아요’ 혹은 ‘하늘에 계신 조상님을 만나게 될 것 같아요’ 중에서 하나를 말하려 했는데, 나도 모르게 “지옥에 계신 조상님을 만났어요”라는 천인공노할 말을 내뱉었다. 정정하고 싶었지만 힘이 없었다. 그 탓인지 나는 한동안 다리가 찢어질 것 같은 근육통에 시달렸다. 어기적어기적 걸어 다니며 어떻게 비건강도 고통이고 건강도 고통(?)일 수 있냐며 다시 한 번 철학적인 질문을 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돈을 아끼지 못하면 차라리 행복이라도 아끼자고, 제발 그만 먹자고, 음식이라는 고금리 대출을 멈추자고….
정지음
싫은 것들을 사랑하려고 글을 쓰는 1992년생. 25세에 ADHD 진단을 받은 이후 첫 번째 에세이 〈젊은 ADHD의 슬픔〉으로 제8회 브런치 북 대상을 수상했고, 〈우리 모두 가끔은 미칠 때가 있지〉, 첫 소설 〈언러키 스타트업〉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