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층 공간은 사무실로 쓰고 있다. 옛날 사진과 빈티지 의자 그리고 영상을 위해 새롭게 산 카메라와 마이크가 나란히 있다.
#콘텐츠크리에이터 #틱톡커 #170만 유튜버 #식품영양학과 #두비두밥 #음식을 사랑하는 사람
전 세계 젠지(Z세대)들은 왜 최은서의 삶에 열광할까. 대학을 막 졸업하고 어떤 일을 해야 할지 모르겠을 때 최은서는 무작정 틱톡 계정 ‘두비두밥’(doobydobap)을 만들었다. 음식에 대한 경쾌한 사랑 하나로. 최은서는 요리하는 모습을 스마트폰으로 찍고, 음식과 얽힌 추억에 내레이션을 덧붙여 숏폼 영상을 완성했다.첫 번째 영상 조회 수는 336K. 유튜브 ‘두비두밥(Doobydobap)’의 구독자 수는 현재 190만 명이다. 최은서는 잘 먹고 잘살기 위해서 스스로의 밥상을 푸짐하게 차리고 기쁜 마음으로 살아낸다. 자신의 투명한 영향력을 국경을 넘나들며 펼쳐내는 그를 그의 집이자 사무실인 성수동의 한 공간에서 만났다.
노포 이곳저곳을 찾아다녔어요. 전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가장 한국적인 식문화라고 생각해서 좋아해요. 을지로 노포에서 찍은 영상도 아마 해외 구독자들에게 흥미롭게 느껴졌을 거예요
미국에서 “너 그 틱톡 봤어?” 하는 영상이 한국에서도 똑같이 화제가 돼요. 오히려 정말 비슷하다는 생각을 자주 해요. 젠지들은 미래보다 현재에 집중하려는 것 같아요. 부모 세대가 ‘집을 산다’는 꿈을 향해 살아갔다면, 새로운 세대는 거대한 꿈을 과감하게 포기하고 현재의 여유를 만끽하려고 하죠. 내가 지금 느끼는 행복에 더 가치를 두면서요.
비슷한 콘텐츠를 보면서 점점 더 닮아가나 봐요
10년 전만 해도 한국 음식의 인지도가 낮았거든요. 이제는 〈오징어 게임〉도 있고 BTS도 있으니까 한국 문화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었어요. 팬데믹으로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사람들이 콘텐츠 소비를 많이 하고요. 숏폼이 이슈가 되면서 저 역시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됐어요.
짧은 영상에서도 음식에 대한 애정이 듬뿍 느껴져요
제가 틱톡으로 SNS 채널을 시작했거든요. 한식 영상은 거의 다 100만 뷰 찍었어요. 시험 기간에 스트레스받으면 엄마랑 같이 ‘홍미닭발’에 가곤 했어요. 영상에서 한국식 닭발 먹는 법을 소개했는데, 해외 구독자들이 그걸 신기하게 생각하더라고요.
댓글로 “나도 시험 끝나고 부모님이랑 먹는 음식이 있었다” “부모님이 시험 기간에만 먹을 수 있게 해준 음식이 있었다” 등등 음식에 대한 추억이 오갔죠. 서로 자주 먹는 음식의 종류가 다르더라도 비슷한 경험을 가진 거예요. 그러니까 사람 사는 게 다 비슷비슷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세계 곳곳의 사람들이 음식에 얽힌 추억을 가지고 있고, 제 채널을 통해 나누는 일이 재미있어요.
유튜브를 시작한 지 1년 약간 넘었죠? 구독자가 190만이에요. 젠지들이 왜 ‘두비두밥’ 영상을 보는 것 같나요
아무래도 사람들이 제 요리 영상 속에 담긴 이야기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음식을 매개로 공감대가 형성되니까요. 또 틱톡이 생기면서 숏폼이 주목받았잖아요. 유튜브 쇼츠도 생기고, 인스타그램 릴스도 생기고요. SNS에 변화가 생기는 시점에 제가 흐름을 잘 탄 것 같아요. 운이 좋았어요.
최은서만의 유쾌함이 더해진 게 굉장히 매력적이라고 생각했어요. 콘텐츠를 만들 때 ‘이것만은 꼭 담아야지’ 하는 원칙이 있다면
숏폼 영상은 ‘짧고 굵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독특한 면이 있지만, 다수의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찾는 게 중요해요. 반대로 러닝 타임이 긴 유튜브 비디오는 좀 더 개인적인 것을 많이 담아요. 20대엔 아직 정해진 게 많이 없으니까 그런 고민이 드러나기도 하고요.
다양한 향신료 실험을 좋아하는 최은서는 재료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도록 라벨링 한다.
브이로그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마켓까지 일부러 찾아가는 걸 봤어요
저는 옷을 사는 것보다 식자재 사러 가는 게 더 좋아요. 미국에 살 때는 한인 마트가 소수자 슈퍼마켓이어서 항상 멀리 가야 했거든요. 반대로 여기서는 이국적인 식자재들을 찾아 멀리 가는 거예요. 그런 마음을 저도 잘 알고 있어요.
절반이라니! 프로페셔널한 모습만 봐서 너무 의외인데요
이유가 너무 많아요(웃음). 영상으로 남겨야 하니 비주얼도 예뻐야 하고요. 맛이 없어도 망한 거고, 구하기 힘든 식자재를 사용한 것도 망한 거고, 조리 과정이 복잡해도 망한 거예요. 사람들이 따라 하면서 어렵게 느끼면 안 되니까요.
그래도 50%를 버리는 건 너무한데요. 저라면 눈 딱 감고 몇 개는 그냥 올렸을 것 같아요(웃음)
그런 생각 한 적 너무 많죠. 그렇지만 제가 하나의 브랜드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기준에 적합하지 않으면 과감하게 포기해요. 콘텐츠의 양이 적더라도 질 좋은 콘텐츠를 올리는 걸 더 중요하게 생각해요.
결국 작은 선택들이 ‘나’를 브랜하는 일이니까요
저를 태그해서 올리는 제 레서피를 활용해 ‘스페인에서 만들었다’ ‘모로코에서 만들었다’ 같은 후기를 보면 엄청 뿌듯하더라고요. 그런데 동시에 무섭기도 해요. 입맛이란 건 주관적인 거니까 더 큰 책임감을 느끼게 돼요. 그래서 50%의 영상을 버리는 선택을 하는 것 같아요.
아치형 천장과 탁 트인 창문이 매력적인 부엌. 계단을 올라가면 작업실이 나온다.
일단 찍고, 편집하는 과정에서 스토리가 만들어져요. 그래서 시간이 더 오래 걸리고, 영상마다 고민을 많이 해요. 매일 아침에 일어나서 레서피 테이스팅을 하고, 쇼츠 영상에 들어가는 내레이션을 글로 쓰면서 하루를 보내기도 해요. 회사에 소속돼 있지 않으니까 저에게 시키는 사람이 없잖아요. 상사가 없으니까 누군가에게 물어볼 수도 없고, 일을 미리미리 진행해야 하고요. 힘들지만 나를 위한 거니까 괜찮아요. 제가 얼마만큼 노력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니까요.
앞으로 ‘두비두밥’이라는 브랜드로 더 해보고 싶은 게 있다면
미국에서 구하기 어려운 한국 식자재를 대중화하거나 한식 밀 키트 같은 걸 만들어보고 싶어요. 한인 마트에서 고춧가루를 팔긴 하는데 대용량밖에 없거든요. 혼자 사는 사람도 많잖아요. 새로운 세대에게 어필할 수 있는 패키지와 포션 등을 고민해서 만들어보고 싶어요. 또 한국적 감성이 느껴지는 소주잔, 노포에 있는 떡볶이 그릇 등을 한데 모아 팔아보고 싶기도 하고요.
요리할 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건 사실 기본적인 개념을 이해하면 요리 방법은 다 똑같아요. 예를 들어 소스를 유화시키는 원리에 대해 이해하거나 고기 로스팅하는 법을 공부하는 거죠. 저는 간을 맞출 때 굉장히 여러 단계에 걸쳐 하거든요. 타워처럼 맛을 겹겹이 쌓아가는 거라고 생각해요. 한 번에 간을 하는 게 아니라 단계별로 맞춰가는 거죠.
정성껏 요리하는 시간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요리할 때면 제 눈앞에서 계속 무언가가 벌어져요. 스마트폰을 잠시 치워두고 중간에 딴짓하지 않고 집중할 수 있고요. 걱정은 미뤄두고 제 행동에 몰두할 수 있어서 좋아요. 저에게 요리는 명상 시간 같기도 해요.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요리가 완성되잖아요! 얼마나 사랑과 정성을 담았느냐에 따라 결과물이 달라지는 것도 매력적이고요.
제게 먹는 건 즐거운 일이에요. 음식을 사랑하거든요! 운동도 단순히 마른 몸을 위해 하는 게 아니라 더 잘 먹기 위해 하고 있어요. 그저 건강하게 먹고, 행복을 만끽하는 것. 그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