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영역에 도전한 금기의 실험 || 엘르코리아 (ELLE KOREA)
CULTURE

신의 영역에 도전한 금기의 실험

이제 새로운 생명체의 탄생은 신만의 영역이 아니다. 충격적인 미래를 예견한 영화 <스플라이스>가 우리에게 의문을 제기한다. 천재적인 상상력으로 완성한 10년의 극비 프로젝트가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ELLE BY ELLE 2010.06.29


감독
빈센조 나탈리 출연 애드리안 브로디, 사라 폴리, 델핀 샤네끄 개봉 7월 1일

꼬박 10여 년의 시간이 걸렸다. ‘퍼즐 스릴러’라고 불리는 똑똑한 SF <큐브>의 빈센조 나탈리 감독과 <헬보이> <판의 미로> 등에서 독특한 크리쳐를 등장시켜 기괴하게 아름다운 판타지를 선보였던 거장 길예르모 델토로의 창의적 만남이 결실을 이루기까지. 시나리오 집필할 당시의 기술로는 영화의 진보적인 상상력을 완성시키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었다. 영화적인 완성도를 위해서도 촬영 기술과 SFX (특수 효과)가 발전할 때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려야만 했다. 쓰디 쓴 인내의 시간을 감내하는 동안 과학은 눈부신 속도로 발전을 거듭했다. 복제양 돌리, 인간 유전자 지도, 급기야 인간 유전자를 조합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상상에 불과했던 영화 속의 과학적인 설정이 현실화 된 지금, <스플라이스>가 바깥 세상에 나와 빛을 볼 타이밍이다.

클라이브(애드리안 브로디)와 엘사(사라 폴리)는 난치병 치료용 단백질을 만드는 연구를 진행하던 중 조류, 어류, 파충류, 갑각류 등의 다종 DNA 결합체인 ‘프레드’와 ‘진저’를 탄생시켜 동물용 의약 단백질 생산을 가능하게 한다. 실험을 거듭하면서 유전자 재조합 기술은 발전하고, 제약회사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다종 DNA 결합체와 인간 유전자를 결합시키는 금기의 실험을 강행한다. 이렇게 해서 인간도, 동물도 아닌 전혀 새로운 생명체인 ‘드렌’이 탄생하게 된다. 단순한 생명체의 형태에서 빠른 세포분열을 일으키며 급속도로 성장한 드렌은 각 종들의 특징을 드러내며 기이한 아름다움을 내뿜고, 마침내 인간의 ‘감정’까지 갖추게 되면서 본능적으로 이성이자 상징적 아버지인 클라이브와의 교감을 시도한다. 그러나 예상하지 못했던 그녀의 성적 본능과 변이는 치명적인 결말을 예고한다.


영화는 크리쳐의 탄생 및 성장과정, 발표회장에서 변이된 생명체들의 충돌 장면(프레드와 진저가 갑자기 난폭해져서 서로를 공격하는 장면은 스플래터 무비처럼 피범벅이 되며 은근히 쾌감이 절정에 이른다) 등에서 공포감과 특수효과를 극대화하며 SF와 크리쳐 장르의 법칙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뿐만 아니라 금기된 신의 영역에 도전한 인간이 창조자로서 대가를 치루게 하거나 인간적인 감정을 가진 크리쳐의 등장으로 극의 재미도 더한다. 허나 흥미로운 점은 따로 있다. 하이브리드 생명체와의 대결을 그리며 SF 판타지 스릴러 장르를 표방하고 있지만, 드렌을 둘러싼 클라이브와 엘사의 감정과 감정의 변화, 관계에 중점을 두며 그들의 심리상태를 드라마적으로 풀어나간다. 그 안에서 갈등과 애정, 긴장감, 공포 등의 감정과 내적 변화를 섬세하게 버무려 내고 있다. 비뚤어지고 왜곡된 모성애, 근친상간, 삼각관계 등의 인간의 욕망에 대한 불쾌한 코드도 결부시키며 윤리적인 문제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도 날카롭게 보인다. 과학적인 상상과 철학적인 사상을 SF 장르 속에 모두 담아내고 있는 셈이다. 남성성 중심의 기존의 크리쳐 영화와는 다른 여성성(모성)을 보여주며 인간의 욕망에 대해 대담하고도 불손하게 표현한 것이 참으로 반갑다.

"<스플라이스>는 마치 내 아이 같다". 영화 시작 전, 빈센조 나탈리 감독이 밝힌 소감이다. 개봉을 하자니 마치 아이들 사진을 보여주는 기분이라며 첫 운을 뗀 그와의 유쾌했던 기자 간담회.

어디서 영감을 받았나.
이상하게 들리실 수도 있지만 개인적인 경험에서도 영감을 많이 받았다. 이 영화는 또 다른 면에서는 인간관계의 이야기고, 다른 크리쳐 영화와 다른 것은 창조자와 창조물의 삼각관계를 그리고 있기 때문에 그런 면에서 개인적으로 영감을 받았다.

영화가 왠지 속편을 예고하면서 끝난 것 같다.
사실 의도했던 바는 결말이 그런 결말이었다. 결말을 그렇게 연출했던 것은 속편을 만들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엘사의 이야기가 그 결말로 끝나는 게 최고라고 생각을 했다.

영화에서처럼 새 생명의 탄생이 가능 하다고 보나?
당연히 가능하다. 영화를 찍기 2년 전 벌써 영국에서 동물과 인간의 배합에 대해서도 합법적인 케이스가 있었고, 한달 전 미국에서도 인공 생물을 만든 케이스가 있었다. 생물체 유전자가 컴퓨터로 프로그래밍 되었기 때문에 우리 영화와 흡사하다. 그래서 우리 영화는 새 생명을 만들기보다도 만들고 나서 어떻게 해야 하는 지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영화다. 그런 면에서 가족영화라고 볼 수도 있다.

드렌을 굳이 왜 여성스럽게 만들었나?
내가 남성이니깐. (웃음) 신화적인 코드를 많이 생각했다. 인간의 역사에서도 인간과 동물의 조합된 코드가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신화적인 매력은 모든 문화적인 경계선을 넘는다. 그리고 또 하나는 신화에서는 인간이 하이브리드 생물체하고 사랑하는 것도 많다. 아직까지 그 부분을 다루는 영화를 보지 못했다. 여성중심적인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다. 어머니와 딸에 대해서 얘기하고 싶었다. <프랑켄슈타인>은 아버지와 아들인 것처럼.

영화 만드는 데 10여 년이 걸렸는데 왜 그렇게 오래 걸렸나?
오래 걸렸던 이유 중 하나는 영화에 내포되어 있는 성적코드다. 이 코드가 헐리우드 내에서 다루기 힘든 내용이었는데 오히려 전세계에서 제일 오래된 프랑스 스튜디오가 영화 기획에 참여했다. 프랑스에서는 이 성적 코드를 상업적으로는 좋다고 긍정적으로 봤다. 또한 이야기의 컨셉을 대중이 받아들일 수 있는 시간이 되길 기다렸다. 영상들을 연출하기 위해서는 기술들이 진화되어야 하고 비용도 절감되어야 했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렸다.

크리쳐 부분 말고 다른 영화와 차별되는 이 영화의 특징.
다른 크리쳐 영화들을 보면 중반에서는 탈출하고 세상으로 나가 비극적인 일들을 야기시킨다. 우리 영화는 자신을 만든 과학자들에 인질로 잡게 되고, 갇히게 되고. 그 구조에서 나오는 정신적인… 공포영화가 나오게 되고. 이런 면들이 전체적인 크리쳐 영화의 장르로 봤을 때 다른점이지 않을까. 거기서 나오는 인간과 크리쳐의 관계를 보여준다.

영화를 보면서 불편한 점도 있었다. 한국 사람들이 받아 들이기 힘든 윤리적인 문제 같은.
한국 뿐 아니라 다른 나라 사람들도 받아들이기 힘든 컨셉이다. 공포 영화 자체가 인간들이 보편적으로 불편해하는 것들을 판타지라는 렌즈를 통해 가깝게 접근해 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든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영화로 볼 수 있다.

엘사를 제외한 모든 주위 사람들이 다 죽는다. 인간에 대해 부정적인 것 같은데?
내 영화에 대해 정의하는 것을 피하고 싶다. 약간의 애매모함을 남기고 싶다. 그런 것보다는 왜 엘사가 생존하나. 엘사가 드렌을 실질적으로 정말 사랑했다고 생각한다. 클라이브는 드렌에게 해서는 안 될 최악의 실수를 하기 때문에 이야기 안에서는 죽어야 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우리 영화는 엘사의 이야기다. 어머니가 되는 과정. 드렌을 만들고.. 나중에는 임신을 하고 애기를 낳기 때문에 어머니의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 인간이 얼마나 괴물이 될 수 있고, 인간 안의 괴물이 모습이 보이고 괴물 안에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인간들이 얼마나 괴기스러운 행동을 할 수 있나. 드렌도 완전히 죄가 없는 건 아니지만 희생자라고 볼 수 있다.

엘사가 드렌에게 하는 행동들은 그녀가 유년 시절 비뚤어진 모성애(애증일 수도 있고)를 겪었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히스테리 하기도 하고, 왜곡된 성적인 인식이 바탕이 되는 부분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완벽하게 이해했다. 그래서 엘사라는 인물 자체가 흥미롭다. 초반에는 강한 모성을 보이다가 드렌이 독립적으로 변하게 되니까 견디지 못한다. 그런 서로 상반되는 면들이 배우들을 캐스팅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영화가 성공한다면 두 배우들에게 공을 돌리고 싶다. 왜냐면 그들이 매우 연기를 잘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7년 만에 한국을 다시 온 소감.
한국을 사랑한다. 한국에 대해서 흥미롭게 느끼는 점 하나가 급변화를 겪은 나라 중 하나 라는 것이다. 지금 세계 자체가 급속도로 변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에서 스플라이스를 개봉하는 이유도 그런 면에서 의미가 있다. 우리 인간이 과학이나 새로운 테크놀로지보다 성장이 늦기 때문에 따라잡기 위해서 급진화 해야 되지 않을까 하는 부분에서 의미가 있지 않나라고 생각한다.
덧붙히고 싶은 건 한국은 놀라운 영화산업이 있고, 활동하는 감독님들은 현재 있는 장르를 다음의 세계로 이끌고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박쥐나 괴물 같은 영화들처럼. 내 영화 스플라이스도 거기에 포함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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